저는 운이 좋은 사람입니다. 만 26세에 경북대에 들어와 지금까지 큰 탈 없이 재직하고 있습니다. 달랑 석사학위 하나 가지고 교수가 되었는데 그 학위도 공군 장교로서 24시간 3교대를 하는 특수 부서에 근무한 덕에 취득할 수 있었습니다. 또 재직 중에 하바드-옌칭 재단의 장학금을 받아 미국에서 박사 과정을 이수하였습니다. 이만하면 운이 좋은 인생이겠지요.
학생 때는 제가 학문이나 교수직과 인연을 맺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습니다. 6.25 피난살이로 대구에 정착한 외롭고 가난한 집안에서 자랐기 때문에 미래에 대한 기대가 높을 수 없었습니다. 가난하더라도 자유로운 교양인으로 사는 것이 꿈이라면 꿈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뜻밖에도 학문을 직업으로 삼게 되었고, 나이가 들면서 나로 인해 세상이 조금이라도 좋아진다면 다행이라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학문을 통해 사회에 기여해야 한다는 사명감을 다소나마 가지게 되었습니다.
미국 학문의 식민지화를 피해서
이런 이유로, 유학 후 경북대에 복직한 1982년부터 한 동안 무엇을 연구할 것인지를 심각하게 고민하였습니다. 미국에서 배운 학문을 계속하는 분도 많았지만, 저는 미국의 사회과학은 미국의 풍토에서 생겨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 도움이 덜 된다고 보았습니다. 제가 미국식 학문을 답습하면 우리 국민이 낸 세금과 우리 학생들이 낸 등록금으로 미국 학문의 식민지화에 일조할 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고민 끝에 토지정책을 연구 분야로 삼게 되었습니다. 대학 시절에는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계기로 전국에 부동산 투기가 번지는 모습을 보았습니다. 경제성장이 본격화되는 과정에서 온 국민이 부동산 투기에, 한편으로는 시달리면서 다른 편으로는 매달리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지난 수 십 년 동안 부동산은 교육과 더불어 우리 사회의 기회균등을 훼손하는 최대의 원인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부동산 문제의 근본적인 해결책을 모색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 분야는 학부에서 법학을 석박사 과정에서 도시계획학을 전공한 저와 인연이 전혀 없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그 내용은 새로운 것이었습니다. 국내에는 제가 관심을 둔 주제에 관한 도서도 연구도 거의 없는 상태여서 자료를 직접 외국에 주문하여 독학하였습니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나름대로 쌓아온 연구 성과가 졸저 <지공주의>에 담겨 있습니다.
토지와 자연은 우리 모두의 것
<지공주의>가 출간된 2009년은 경북대에 몸담은 지 무려 33년이 되는 해였습니다. 또 제가 회갑을 맞은 해로서 정년퇴임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는 시점이었습니다. 그래서 그 동안의 연구 성과를 망라하여 하나의 체계 속에 담아 보려고 하였습니다. 과거에 출간했던 <토지정책론>과 <알기 쉬운 토지공개념>에 후속 연구 성과를 보태 전체를 새롭게 집필하였습니다.
<지공주의>를 압축하면 아래 토지원리와 같습니다.
토지원리
① (평등한 토지권) 모든 국민은 토지에 대해서 평등한 권리를 가진다.
② (합의에 의한 우선권 인정) 사회적 필요성이 있으면 사회적 합의에 의해 특정인에게
우선권을 인정할 수 있다.
③ (우선권 인정의 조건) 사회가 특정인에게 우선권을 인정하려면 다음 조건을 충족시켜야
한다.
㉮ (취득기회 균등) 모든 사람에게 우선권 취득기회를 균등하게 보장한다.
㉯ (특별이익 환수) 우선권에서 발생하는 특별이익을 환수한다.
㉰ (사회적 제약) 우선권 행사는 우선권을 인정하는 취지에 부합해야 한다.
‘지공주의’(地公主義)라는 용어를 처음 듣는 분이 많으실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제가 만든 용어니까요. 지공주의는 토지공개념과 비슷한 말입니다. 인간이 생산한 것은 생산자가 소유하되 천부된 토지와 자연은 우리 모두의 것이 되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자연물을 인공물과 다르게 다루는 것은 매우 상식적이고 역사적으로도 뿌리가 깊지만 현실에서나 학계에서나 무시당하고 있습니다. 제 연구에 대해서도 ‘응, 한 주제를 가지고 줄기차게 하는군’ 정도의 반응이 있었을 뿐 그 이상의 관심은 끌지 못했습니다.
지공주의는 좌도우기론(左道右器論)
그러다가 참여정부 시절 부동산 대책을 둘러싸고 벌어진 뜨거운 논쟁 속에서 ‘부동산 정책의 배경에 헨리 조지가 있다’는 언론의 보도가 나오면서 다소간 주목받기 시작했습니다. 헨리 조지는 19세기 미국의 토지사상가 겸 사회운동가로서 지공주의의 선구자입니다. 이런 보도가 나온 것은, 우리 학교 이정우 교수가 당시 청와대 핵심 브레인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이정우 교수는 저를 포함한 몇몇 대구지역 학자들과 함께 ‘헨리 조지 연구회’를 만들어 지공주의에 대해 연구해 왔습니다.
부유층, 보수층, 신자유주의 진영에서는 지공주의를 극력 비판합니다. 학계에서도 지공주의에 대한 오해가 많고, 지공주의를 결론 또는 배경으로 삼는 연구에 대해서는 평가가 좋게 나오지 않습니다. 그래도 아예 무시당하는 것보다는 비판이라도 받는 것이 낫다고 위안하고 있습니다.
‘지공주의는 좌파’라는 오해도 있습니다. 토지국유화나 사회주의를 연상하기 때문인 듯합니다. 마음에 안 드는 대상에는 일단 좌파라는 딱지를 붙이고 보는 우리나라 기득권층의 나쁜 버릇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물론 지공주의는 좌파의 가치인 분배정의와 사회보장을 지향합니다. 그러나 자유와 시장을 기반으로 하는 우파적 방법을 제시합니다. 좌파의 이상을 달성하려면 좌파가 지금까지 내놓은 것보다 더 세련된 방법이 필요하며 또 우파적인 분배정의만 진정으로 구현해도 빈곤 퇴치와 사회보장이 가능하다고 보는 것이 지공주의의 인식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는 지공주의를 좌도우기론이라고 합니다.
꿈이 없으면 개혁도 없다
위에서 본 토지원리 중 우리 사회에서 심하게 무시되는 것이 ③의 ㉯(특별이익 환수)입니다. 토지에서 생기는 불로소득을 방치한다는 것입니다. 토지 불로소득은 분배정의와 경제효율을 해치며, 미국발 금융위기에서 비롯된 현재의 경제위기도 뿌리는 여기에 있습니다. 이런 폐해를 막기 위해 <지공주의>에서는 토지보유세를 높이면서 다른 세금을 줄이자고 제안합니다.
세금 중에 경제 효율 면에서 토지보유세가 가장 우수하다는 사실은 우파(?) 교과서에서 예외 없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본다면 <지공주의>의 부제인 ‘새로운 토지 패러다임’은 잘못 붙인 셈입니다. 지공주의는 전혀 새롭지 않은 평범한 진리이기 때문입니다. 한편, 북한과 같은 토지국유제 사회라면 토지를 개인에게 임대하고 사용권을 최대한 보장하여 개인의 창의를 유발하는 방안을 제시합니다.
이해관계와 고정관념으로 얼룩진 현실에서 지공주의가 수용되기 어렵다는 사실을 잘 알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기할 수 없습니다. 모든 개혁은 불가능해 보이는 꿈에서 시작되며, 꿈을 포기하면 결국 아무 개혁도 이룰 수 없기 때문입니다. 마치 중생이 빠짐없이 부처가 된다든지 하나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 것이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더라도 그렇게 되도록 노력하지 않을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애쓰는 그 자체만으로 아름다운 일이고 세상이 조금이라도 그런 방향으로 변화한다면 보람도 느낄 수 있지 않겠습니까?
눈앞의 현실에서는 이성의 영향력이 비록 미약해 보여도 역사는 결국 그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 믿습니다. 200년 전에 노예제도가 철폐될 것이라고 누가 예견했겠습니까? 100년 전에 남녀가 동등하게 투표권을 행사할 것이라고 누가 내다보았겠습니까?
헨리 조지는 <진보와 빈곤>에서 “다른 사람도 같은 별을 본다는 사실을 알 때 더 확신을 가지고 별을 보게 된다”고 하였습니다. <지공주의>를 통해 새로운 별을 보게 되는 사람이 몇 명이라도 나타난다면,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가운데 묵묵히 연구해온 학자로서 보람 있는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