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토지+자유 연구소에서 새롭게 일하게 된 조성찬입니다. 대략 10년 전인 1999년 대학 졸업과 동시에 삶의 방향을 확정하지 못한 채 사회로 내몰렸다가, 그 당시 접하게 된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읽고 씨름하다가 여기까지 오게 되었습니다. 이 글의 목적이 저를 소개하는 것이기에 제 삶의 여정을 간단하게나마 나눌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학 때 서울을 처음 경험하게 됩니다. 초등학교 6학년 때 수학여행을 갔었는데, 버스에서 바깥을 바라보니 무슨 탑이 보였어요. 그래서 선생님께 확인도 안하고 혼자 생각에 ‘저것은 그동안 TV에서 보고 들어왔던 남산타워가 분명해’ 라고 결정해 버리고 서울을 경험했다고 스스로 생각했지요. 그런데 대학 때 서울에 올라와보니, 아뿔싸! 제가 초등학교 때 본 것은 남산타워가 아니고 서울 외곽(아마도 과천)의 어떤 방송탑이었습니다. 지금도 그것이 무슨 탑인지는 잘 기억이 나지 않아요.
이러한 백그라운드를 가진 제가 선택한 학부 전공은 도시계획! 도시도 모르는 시골 촌놈이 도시계획을 선택한 것입니다. 원래는 학교에서 한의대를 가면 돈 많이 번다고 했었고, 실력도 충분히 되었었는데(?), 그놈의 비염이 고1때부터 저를 괴롭히기 시작하더니 고3 대학입학시험 보기 전까지 저를 무척이나 괴롭히더군요. 그런데 얄밉게도 전공을 결정한 후 선택의 여지가 없이 학력고사를 보기 2주 전에 비염이 기적처럼 다 나았습니다. 그때는 나도 하나님의 치료를 경험했다고 아주 좋아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참 아쉽기 그지 없네요. 좀 더 일찍 낫지 그랬냐고, 아니 좀 더 일찍 치료해 주시지 그랬냐고...
학부 전공은 저의 배경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세련됨’을 요구하는 학문이었고, 정든 고향을 떠났으니 마음의 허전함을 달랠 길이 없어, 큰 맘 먹고 교회 청년부 예배를 갔는데 예배가 끝나고 한 선배는 저를 당구장에 데리고 가 담배를 피며 당당하게 당구치는 모습을 보여주어 당황하게 만들었지요. 그렇다고 대학교 1학년 때부터 참여한 기독학생회는 저의 답답함을 덜어주기 보다는 오히려 가중시켰고. 저는 그렇게 대학 7년(군 생활과 휴학 포함)을 방황하며 아웃사이더로 보냈습니다. 게다가 초등학교 때 간염 예방접종을 3차와 추가접종까지 철저하게 다 맞았는데, 아뿔싸! 고등학교 때 혈액검사에서 간염바이러스가 몸속에 있다는 통보. 별 거 아니라는 의사의 말만 믿고 살았는데 결국 이놈의 바이러스가 대학 3학년 스트레스가 가장 많을 때 저를 쓰러뜨리더군요. 그 때 저 혼자 입원수속하고 퇴원수속하는 가슴 아픔... 글을 쓰는 지금 잠깐 눈물이 핑 도네요. 전공도 안 맞아서 속이 쓰렸는데, 건강까지 문제를 일으키자 저는 온통 낙심하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로 정상적인(?) 인생을 접고 말았지요.
그 때 헨리 조지의 진보와 빈곤을 만나고 성토모를 만났지요. 어느 혁명가가 그랬나요. 프롤레타리아가 잃을 것은 쇠사슬밖에 밖에 없다고. 저는 그 때 잃을 것이라곤 3개월짜리 정부지원 컴퓨터 프로그램 연수과정 뿐이었습니다. 그러니 헨리 조지가 그린 그 이상사회, 그리고 성경의 토지법에서 이야기한 그 공의의 질서가 이 땅에 임하도록 애쓰는 삶에 몸과 마음을 던지기가 그렇게 가벼웠습니다. 게다가 속을 쓰리게 했던 도시계획이라는 전공은 주로 토지를 다루는 것이라 전과는 달리 큰 장점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그 이후로 체계적인 공부가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석사과정에 진학하여 지대세의 세입충분성에 관해 석사논문을 썼어요. 국토연구원에서 2년 정도 직장생활을 하다가 통일에 대비한 토지정책 연구를 위해 북한에 큰 영향을 주고 있는 중국에서 공부할 필요성을 느껴, 2007년도에 중국인민대학교 토지관리학과에 진학하여 올해 여름에 무사히 박사학위를 받았습니다. 박사학위 제목은 “중국 도시토지연조제 및 북한 경제특구에의 적용모델 연구”입니다.
저는 지금 두 아이를 둔 가장으로써 또다시 몸을 던집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처음처럼 가볍지가 않네요. 무게가 4배 이상으로 늘었어요. 아내와 두 아이들 때문에.
제 인생에 대해 이런 가정을 해 봅니다. 제가 만약 비염으로 고생하지 않았다면? 제가 만약 도시계획이라는 전공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제가 만약 간염으로 힘들어하지 않았다면? 아마 그랬다면 저는 지금 여기에 없을 것입니다. 저는 예정론 비슷한 사고를 좋아하지는 않지만 하나님께서 저의 인생을 어떤 목적을 두고 그 방향으로 몰고 간 것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듭니다.
여러 가지로 힘든 이때에 저의 글이 여러분에게 조금이라도 편하게 다가가고 싶어서 진중하지 않은 표현들도 사용하였습니다. 글을 쓰고 보니 제목과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이는 내용이 되고 말았네요. 어째든 저를 소개하며 과거를 뒤돌아보니 제 인생에 참 많은 변화들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동안 변하지 않은 게 있어요. 토지사유제의 폐단이 그것이구요, 노동자와 집 없는 서민의 고단한 삶이 그것이구요. 그런데 또 하나 변하지 않은 것이 있어요. 희년을 선포하라는 하나님의 엄중한 명령! 10년이 지났어도 여전히 유효한 하나님의 희년명령 앞에 토지사유제의 폐단과 노동자, 서민의 고통스런 삶이 앞으로도 여전히 변하지 않을지는 두고 볼 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