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 1학년을 마칠 때의 일이다. 전공 공부가 재미없어 1학년을 맥 빠지게 보낸 나는 신앙훈련을 통해 대학생활의 어려움과 허무를 극복해 봐야겠다는 생각에 선교단체에 가입하였다. 그해 선교단체 수련회 중 어느 날 저녁 말씀의 주제가 ‘선교’였는데 설교 끝에 선교사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다. “여러분 중에 하나님을 위해 북한 선교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일어나십시오.” 앞자리에 앉아 있던 나는, 이런 초청에는 잘 반응해 주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으로 벌떡 그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뒤를 한 번 둘러보았는데, 대부분의 학생들이 강심장이었던지 자리에 꿋꿋이 앉아 있었다. 아니, 선교사님이 그렇게 선교를 강조하셨고 이렇게 간절하게 세 번씩이나 초청하시는데, 인간적으로 일어나 줘야 하는 것이 아닌가. 선교사님은 나와 같이 순진한 마음으로 일어난 소수를 위해 기도해 주셨고 그날 예배는 그렇게 끝이 났다.
어쨌든 그 수련회에서 일어선 것이 남북통일에 관심을 갖는 하나의 작은 계기가 되었고 그 후 통일을 준비하는 여러 사람들과의 만남들을 통해 남북통일 문제에 더욱 마음을 쏟게 되었다. 과연 통일을 위해 내가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게 되었고, 고민 끝에 내 전공을 살려보자는 결론을 내렸다. 전공인 ‘국어교육’을 살려서, 통일 이후에 남북한 말의 차이 때문에 생길 수 있는 문제들을 미리 파악하고 준비해 보자는 꿈을 갖게 되었다. 그 꿈을 구체화하기 위해 지금 대학원에서 남북한 언어 통합을 주제로 공부하고 있다.
남북한의 언어는 발음, 억양, 어조, 어휘, 문법, 맞춤법 등에서 차이를 보인다. 이러한 차이는 한국어와 일본어와의 차이에 비한다면 아무것도 아닐 수 있으나 통일 전후에 큰 사회적 문제가 될 수 있다. 이는 새터민(법률상 공식 명칭은 ‘북한이탈주민’)이 남한에 정착하면서 겪게 되는 언어 문제에서 미리 확인할 수 있다.
2010년 현재 새터민은 2만 명에 육박하고 있으며 앞으로도 계속 늘어날 전망이다. 새터민은 남한에 입국하게 되면 국정원의 조사를 받고 3개월 동안 하나원(통일부 산하 기관)에서 남한 정착 적응 교육을 받는다. 적응 교육이 끝나면 전국의 각 지역으로 흩어져 남한 사람과 더불어 살아가게 된다.
새터민들은 남한의 자본주의 경제 체제에 익숙하지 않아 여러 어려움을 겪음과 동시에 남한어와 다른 자신의 말 때문에도 힘든 시간을 보낸다. 특히 자신들의 발음과 억양이 남한과 달라 남한 사람들이 자신들의 말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것 때문에 어려워한다. 또한 외래어를 포함하여 남한에서 자주 사용되는 수많은 어휘들을 배워 가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다. 새터민은 취업을 해서도 말 때문에 어려움을 겪는다. 일단 남한 사람이면 다 알고 있을 기본 어휘들을 많이 모를 뿐만 아니라 남북한의 화법 차이를 이해하지 못해 어려움을 겪는다. “다음에 한 번 봅시다.”는 남한 동료의 단순한 인사말을, 정말 만나자는 의미로 이해하여 그 동료에게서 연락이 오기만을 계속 기다렸다는 일화, ‘죄송합니다’는 말을 잘 하지 않는 북한의 영향을 받아, 남한에서 ‘죄송합니다’는 말을 적절히 하지 않았더니 직장 동료가 오해한 일화 등 여러 웃지 못할 사례가 많이 발생하고 있다.
새터민들이 언어로 인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남한 사람과 자주 대화하고 새로운 남한 어휘들에 빨리 적응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새터민들에게는 이것이 쉽지 않다. 왜냐하면 새터민들이 자신의 본래 말투를 사용하는 순간, 남한 사람들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로 바라보거나, 이상하다는 표정을 짓기 때문이다. 심지어 새터민을 무시하거나 놀리는 듯한 말을 하기도 한다. 자신들의 말 때문에 이런저런 곤란에 처하거나 피해를 입는 것이 반복되다 보면, 새터민들은 스스로의 정체성을 숨기기 위하여 남한 사람과의 소통을 피하게 된다. 남한 사람과 대화를 자주 하지 않으니 남한어에 적응할 기회가 줄어들고 이는 다시 남한 사람과의 소극적인 만남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이다.
이는 새터민 학생들도 마찬가지로, 새터민 학생들 중 절대 다수가 남한의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중도에 그만두게 되는데 그 주요 원인 중 하나가 남한 학생들의 놀림과 차별 이다. 그렇잖아도 남북한의 학습 용어가 다르고 교과에 대한 지식이 얕아 남한의 학교생활에 적응하는 것이 어려운데, 새터민 학생들의 말을 놀림의 대상으로 삼는 남한 학생의 태도가 새터민 학생에게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그래서 많은 새터민 학생들이 남한의 정규 학교에서 교육을 받지 않고 혼자서 검정고시를 준비하거나 새터민 청소년만을 위한 대안 학교에서 별도로 교육을 받고 있다.
지금까지 사용해 오던 자신의 말이 남한에서는 고쳐야 할 말, 이상한 말, 재미있는 말로 전락해 버릴 때 새터민들이 어떤 마음일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할 필요가 있다. 더불어, 새터민이 현재 겪고 있는 언어 적응의 문제는 앞으로 남북한 통일 시대를 대비하기 위하여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 지금은 새터민들에게 북한에서 사용하던 ‘위생실, 몸까기, 입쓰리, 방송원, 손기척, 일없다, 살결물’ 대신에 ‘화장실, 다이어트, 입덧, 아나운서, 노크, 괜찮다, 스킨’을 쓰도록 요구할 수 있으나 과연 통일 이후에도 이와 같은 일방적 요구가 정당할지는 의문이다. 통일은 남북한 사람들이 더불어 살아가는 것일진대, 한 쪽의 언어가 완전히 부정되는 일이 생긴다면 사회적 혼란과 갈등이 적지 않을 것이다. 일방적인 흡수 통일이 문제가 될 수 있는 것처럼, 일방적인 언어 흡수는 남북한의 온전한 통일에 큰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를 예방하기 위해서는 남북한 사람들이 서로의 언어를 충분히 이해하고 상호 존중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다행히 현재 남한의 중학교 국어교육에서는 북한어를 이해하는 수업이 진행되고 있다. 7차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 3학년에, 2007년 개정 국어과 교육과정에서는 중학교 2학년에 남북한 언어를 비교하는 내용이 배정되어 있어 학생들이 한 번쯤은 북한어를 이해할 수 있는 기회를 갖게 되었다. 그러나 아쉽게도 북한에서는 남한어에 대한 이해 교육이 전무한 실정이다.
정부 차원에서는 남북한 공동 사전을 편찬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 중이다. 1989년 문익환 목사님이 방북하셔서 김일성 주석과 남북한 공동 사전의 필요성을 공감하신 일이 있었다. 이를 계승하기 위해 남북한의 국어 전문가들이 2006년부터 남북 공동 사전인 ‘겨레말큰사전’ 편찬 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2013년에는 사전이 발간될 예정이나, 남북한의 정치 환경에 따라 그 시기가 조정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새터민이 현재 남한에서 겪는 언어적 어려움을 잘 해결해 나가는 것이 통일을 위해서 귀한 밑거름이 될 것이다. 따라서 새터민의 언어 문제를 연구하고 통일 시대의 국어를 준비하기 위해 지금부터 차근차근 준비해야 하나, 아쉽게도 이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부족한 실정이다. 국가 차원의 관심과 더불어 국어를 공부하는 사람들의 관심과 도전이 필요하다. 선교사님의 초청이 내가 통일 문제에 관심을 갖게 된 작은 계기가 된 것처럼, 나의 글이 남북한 언어 문제에 관심을 갖게 만드는 작은 계기가 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