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희년실천주일 참여교회가 1 교회 더 추가되어 총 37개 교회가 참여하게 되었다는 소식을 ‘희년함께’ 홈페이지에서 접했습니다. 얼마나 반갑고 감사한 일인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희년함께에서 제시하는 실천사항의 내용이 참 쉽지 않은 것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이 같은 참여가 하나님 앞에서 그분의 뜻대로 살겠다는 선언으로 이해되어 참 도전이 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희년실천주일운동의 본질이 선언을 넘어 행함에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성경을 묵상할수록 하나님께서 택하신 백성과 공동체에게 그 무엇보다도 강력히 요구하시는 것이 당신의 뜻대로 행하는 삶임을 깨닫습니다만 이 같은 사실이 요즘처럼 절절하게 다가왔던 적도 없는 것 같습니다. 그 까닭이야 물론 이것이 기본적으로는 저 스스로에 대한 강력하고 끊임없는 도전이기 때문이겠습니다만, 더불어 교회와 연관 지어 생각해 보면 사실 이 부분이 현재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난관을 극복하는 마스터키 일진대 이를 위해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닮기는커녕 물신주의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 대한 안타까운 심정과 맞닿아 있기도 합니다.
이에, 하나님의 뜻대로 사는 삶에 대한 이런 저런 생각들을 함께 나눠보고자 합니다. 희년함께 가족들과 함께 하는 나눔인 만큼 헨리조지센터에 신선한 커피 한 잔 두고 서로 마주앉아 수다 떠는 마음으로 글을 써내려 가 보려고 합니다. 어찌 보면 ‘하나님의 뜻대로 살기’에 마음껏 가지 쳐 생각해 보기라고 할 수도 있겠습니다.
실마리를 ‘제자도’에서부터 풀어 보면 어떨까 합니다. 왜냐하면 ‘아버지이신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삶(마태 7:21)’은 제자도의 본질이라고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마태 28: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마태 28:20)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 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마태사도가 기록한 예수의 ‘최종 명령’을 제자를 삼는 입장이 아닌 제자가 된 사람들 입장에서 보면, 그들에게 일어나는, 아니 사실은 ‘일어나야만 하는’ 일이 두 가지가 있는데 바로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는 것’과 이를 근간으로 하여 ‘예수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배우고 가르치며 지키는 삶을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 세상 끝날이 올 때까지 심판주이신 예수의 다시 오심을 소망하며 제자 된 그리스도인이 보여야 하는 모습은 바로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삶’인 것입니다.
이는 또한 성령의 핵심 사역과 자연스럽게 연결됩니다. 앞에서 본 말씀에도 나와 있습니다만, 예수께서는 제자 된 이들에게 단순하게 그 뜻대로 살 것을 요구하지 않고 그러한 삶에 앞서서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아야 함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저는 이 부분이 바로 성경의 가르침이 다른 종교와 구별되는 핵심이라고 생각합니다. 제 지식의 일천함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겠습니다만, 많은 종교적 가르침들이 (적어도 사이비가 아니라면) 고매한 윤리적 삶을 촉구하고 있음에도 철저히 자신의 수련과 노력을 통해 달성하는 것이되 오직 성경만이 그러한 삶의 근간을 하나님이신 성령의 임재에서 찾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6: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그리고 이러한 성령의 임재를 통해 행하는 ‘그 뜻’의 구체적 내용은 바로 율법과 맞닿아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물론 수천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 문자 그대로 따를 필요는 없겠습니다만(그럴 수도 없을뿐더러), 그것이 의미하는 핵심정신, 즉 예수께서 말씀하신 ‘율법의 중한 바’가 무엇인지를 깨달아 성령의 권능에 힘입어 행하는 삶을 사는 것이 핵심이라고 할 것입니다.
또한 이는 하나님 나라의 관점에서 볼 때, 장차 임할 하나님의 나라를 준비하는 일인 동시에 지금 여기에서 하나님 나라의 삶을 살아내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이를 풀어 보자면, 제자 된 이들과 그 공동체는 내주하시는 성령을 통해 예수의 삶을 따라 살아가고 그 속에서 그 분의 성품을 닮아갑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대로 살아감을 통해 제자도의 본질과 더불어 현재적 하나님의 나라를 드러내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제자와 그 공동체는, 예수께서 공생애 속에서 많은 이적을 통해 현재적 하나님 나라를 시작하신 것처럼 외적으로 임하시는 성령의 능력을 통해 그 사역과 삶 속에서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고 선포하게 된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더불어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보다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관한 것임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그 통치의 영역에는 제한이 없음을 또한 믿습니다. 하나님이 개개인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경세(經世)’하고 계심을 잘 알고 있기에 이처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삶’이 단순히 개인적 삶에 그치지 않고 제도와 문화, 나아가 우리 삶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것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가 이번 희년학교를 통해 잘 알게 된 ‘하나님 나라의 두 기둥이 공평과 정의’이고 이러한 ‘공평과 정의’ 또한 단순한 이상, 선행을 넘어 개인, 공동체, 모든 제도를 아우르는 것이라는 사실과도 정확하게 부합합니다.
이제 마구 풀었던 가지치기를 다시 나무 기둥으로 수습해 보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2:9) 오직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 사도의 말씀대로 희년함께 회원분들과 희년실천주일에 뜻을 같이하는 분들 모두가 우리 삶의 전 영역에서 택하신 족속, 왕 같은 제사장, 거룩한 나라, 그리고 그 소유된 백성으로서 성령의 권능과 도우심을 힘입어 하나님의 나라를 지금 여기에서 살아냄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자의 아름다운 덕을 선전하게 되기를 진심으로 소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가지치기 하나 더!
(고린도전서 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
이것이 결국 다시 사심으로 모든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신 예수를 따라 장차 있을 부활에 대한 소망을 품고 지금 여기에서 부활의 삶을 살아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개개인뿐만 아니라 말 그대로 ‘만물’을 창조하셨고 지금도 ‘경세(經世)’하고 계심을 잘 알고 있기에> 이처럼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삶’이 단순히 개인적 삶에 그치지 않고 제도와 문화, 나아가 우리 삶의 전 영역을 아우르는 것임을 확인하게 됩니다.] <>안의 전제... 늘 성경묵상 나눠주셔서 감사합니다. 정말 많은 유익을 얻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