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의 생로병사를 엿보게 될 때, 특히 그 삶이 표상이 되는 삶, 나는 지금 무엇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 자의식에 빠지게 되는 그런 삶을 엿보게 될 땐 현실에서 그 삶을 이끌어갔을 힘에 대해 나름의 상상을 해보게 된다. 그리고 그 상상의 과정에서 또 다른 사람들의 삶이 겹쳐 보이면서 삶의 보편적인 성품들을 읽어 내리게 되는 것이다.
‘의사이자 사제로 남수단에서 선교사역을 하다가 건강악화로 47세의 나이로 선종하신’고 이태석 요한 신부님의 이야기가 그랬다. ‘아프리카에서 가장 가난한’으로 수식되는, 분쟁중 남수단 지역에서 근무한 사제로 소개되는 분. ‘한국인 사제로는 처음으로 아프리카 파견을 지원하여’로 소개되는 사제의 이야기. 처음에는 그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보았고 후에는 그분이 쓰신 책을 보았다.
사역지인 남수단에서의 장면들보다 암투병을 시작하던 시간의 영상이 더 먼저 보여지던 그 다큐멘터리에서 처음 눈을 사로잡은 장면은, 아직 일상 거동이 가능하시던 신부님의 투병 초기의 모습이었다. 함께 생활하는 요양원 환자들 앞에서 작은 음악회인가를 한다고 노래를 부르는 장면이었다. 마치 등산복같은 주황색 잠바를 입은, 목에는 흰 땀수건을 척 걸친 여느 아저씨가 누구의 노래인지 알 수는 없지만 김추자나 추상미 같은 가수가 불렀을 것 같은 분위기의 트롯트 한 곡을, 마치 한 많은 인생을 살고 가듯 뽑아내고 있었다. 노래방식 기계반주와 주황색 잠바, 그리고 검정마이크의 조합이 주는 현실감이 한산하게 느껴져 가슴이 울리도록.
장면이 바뀔수록 신부님은 야위어갔고, 머리가 빠진 채 영성체를 드리다가도, 더 후기에는 암 자체의 에너지 소모로 바짝 마른 몸을 간신히 침대에 기대고도 신부님은 웃고 계셨다. 더 이상 신부님의 모습은 없고 수도회의 수도회 장으로 거두어진 장례 장면은 사제들과 교인들이 북적이는 행렬과, 동료 성도들과 나란히 묻힌 자리를 비추어 주었다.
신부님에 대한 사람들의 이야기 중 귀에 맴돌았던 것은, 침대에만 누워 거동을 하지 못하시던 말기에도 어머니가 방문하실 때면 몸에 꽂혀있던 관들을 깨끗이 정리해서 자신을 앉혀 달라 부탁하여 깨끗하고 웃는 모습으로 어머니를 맞았다는 이야기였다.
온 몸으로 하나님을 사랑해서, 물질주의와 이기심의 신에 절하는 시대를 거슬러 자유롭게 사랑하는 자유를 누린 한 인생. 그 삶의 마지막 일 년 남짓한 시간을 지지해 주었을 공간과 사람들을 자꾸만 상상하게 되는 것은 사실, 주변에서 듣게 되는 선교사님들의 현실에서의 아픔에 관한 이야기 때문인 것 같다.
특별하지만 또 수없이 많았던 시대의 보편적인 부르심으로, 선교를 감당한 선교사님들이 이제 은퇴 후 귀국을 준비할 때, 한국사회로 돌아와 자녀를 키우고 출가실킬 때, 남과 다르지 않은 육체에 암과 같은 질병으로 이생에서의 삶을 정리해야 할 때 불거지는 문제들은, 다시 이 땅에서의 현실을 고민해야 하는 문제들은 들을 때마다 늘 무겁게 다가온다.
요양원 신부님의 트롯트를 들어주던 요양원 사람들, 어머니에게까지 사랑의 거리둠을 가능하게 해주었을, 몸의 관들을 깨끗이 정리해달라는 부탁을 기꺼이 해주었을 손길들, 그리고 어떤 형태의 헌신을 하였은들 동일하게 수도회 공동의 장으로 치루어졌을 장례의 모습들. 그 모습들과 함께 떠오른 것들은 각자의 자리에서 많은 것들을 포기한다고 하며 헌신하였지만 사역의 형태와 공간이 바뀔 때마다 생로병사의 무게를 다시 감당하기 위해 고통해야 하는 선교사님들의 아픔이었다.
폭력적일 정도로 경쟁적인 한국의 교육의 흐름에 내놓아야 하는 자녀들과, 그 자녀들을 보며 힘들어 하는 사모들. 민간 사보험을 몇 개씩 가입하고도 존재의 불안감을 채울 수 없는 의료환경에서 정말 ‘다 죽게 되었더라도’ 갈 요양원이 없어서 본토 친척이라 하며 떠났던 가족과 친지들에게 돌아가 몸을 누여서, 사랑하여서 보여주고 싶지 않은 아픈 모습, 육신의 겉과 속이 소멸해가는 모습까지 다 보여주고 떠날 수 밖에 없는 인생의 아픔들..
직장이던 병원에서 가끔, 밤에 병원을 벗어날 수 없는 규정 때문에 병원 내에서 가장 으슥한 공간으로 숨어들 때가 있었다. 오직 나만이 찾을 수 있을 거라 착각한 그 공간에, 사람들과 일상의 빡빡함으로부터의 거리를 찾아. 그러다가 전혀 다른 목적으로 그 공간에 이미 와 있던, 혼자 숨어 소리죽여 울던 보호자들을 마주칠 때가 있었다. 어둠속에 앉은 뒷모습에서 흘러나오는 울음소리는 늘, 같은 공간에서 하루종일 생활하면서도 그 생로병사의 무게를 조금도 덜어줄 수 없는, 사람과 사람의 거대한 벽에 부딪히는 메아리로 가슴을 먹먹히 했다.
표상으로서의 삶을 표상으로 가능케 떠받히고 있는 현실에 힘을, 나는 이태석 요한 신부님의 삶에서 찾고자 했고 또 보았던 것 같다. 그것이 개신교의 개교회주의와 카톨릭의 거대한 소유구조의 차이로 설명하기에는, 한 사람의 탁월한 역량이나 헌신도의 문제로 설명하기에는, 그 설명의 넉넉하지 못함이 ‘내가 어려서부터 늙기 까지 의인이 버림을 당하거나 그 자손이 걸식함을 보지 못하였도다(시편37:25)’는 말씀에 자꾸만 부딪힌다. 그리고 그 설명의 취약함은 사람과 사람의 벽에 부딪히는 메아리의 울음처럼 들려와 늘 가슴을 먹먹케 한다.
어쩌면 생명의 희년이 가장 필요한 곳이 의료계와 교육계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드네요.
아직도 미국에 계시겠죠. 건강히 잘 지내다 돌아오시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