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법칙과 경제법칙은 하나!”라는 헨리 조지의 이 외침은 하나님 경외 신앙에서만 나올 수 있는 ‘대담한 선언’입니다. 그의 역작 『진보와 빈곤』에는 이 선언을 입증하기 위한 그의 열정이 곳곳에 묻어납니다. ‘인구가 너무 많아서 가난한 사람이 많은 것’이라는 맬서스의 주장을 무려 100쪽이나 넘는 분량을 할애해 비판한 것도 이런 열정 때문입니다. 공평과 정의의 하나님을 확고부동하게 믿고 있었던 그에게 맬서스의 주장은 단순히 틀린 것이 아니라 “신성모독죄”였습니다. 영원하신 자, 하나님을 모욕하는 주장이라는 것입니다.
“도덕법칙과 경제법칙은 하나!”라는 주장은 법과 제도가 올바를수록, 다른 사람의 자유와 평등을 존중해주는 제도 일수록 경제가 더 성장할 뿐만 아니라 성장의 과실을 골고루 향유한다는 것을 뜻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제가 성장하려면 어쩔 수 없이 부패도 있어야 하고, 때로는 독재도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헨리 조지의 생각, 더 나아가서 성경의 가르침과 정확히 배치되는 생각입니다.
오늘날 한국 그리스도인들 마음속에도 이런 생각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습니다. 우리는 아래의 두 가지에서 그것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첫째는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박정희 대통령을 지지하는 것에서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박정희 대통령을 존경하는 사람들 마음속에는 이런 생각이 있습니다. “그때는 강력한 지도자가 나타나서 경제발전을 이끌어야 성장이 가능했고, 그 덕에 우리가 이렇게 먹고 살고 있는 거다.”, “박정희 같은 유능한 지도자가 없었으면 우리는 아직도 가난에 허덕이고 있을 거야.” 한마디로 자유, 인권, 민주주의, 정의도 좋지만, 그런 것은 배부른 다음에나 가능하다는 생각입니다.
그러면 경제성장은 누군가 힘세고 똑똑한 사람이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대지 않으면 불가능한 것일까요? 한국 사람들은 위대한 리더가 마련한 혹독한 훈련 코스를 밟지 않으면 정신을 차릴 수 없는 민족일까요? 전 국민이 “우리는 민족중흥의 역사적 사명을 띠고…”로 시작하는 <국민교육헌장>을 달달 외우고 시키는 대로 해야 정신이 개조되고 경제성장이 가능한걸까요?
저는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자유ㆍ인권ㆍ정의라는 가치가 구체적으로 실현될수록 경제성장이 더 빠르고 그 내용도 더 튼실할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이 성경의 정신에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성경에는 희년의 정신이 지켜질 때, 즉 자유와 해방의 원리가 한 사회에 뿌리 내렸을 때 사회는 건강하고 풍요로웠다는 것을 증언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이 사는 동안에 유다와 이스라엘이 단에서부터 브엘세바에 이르기까지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과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더라.(왕상 4장 25절)
“각기 포도나무 아래와 무화가 나무 아래에서 평안히 살았”다는 말씀은 결국 희년의 원리인 ‘평등한 토지권 정신’이 구현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사람의 자유와 평등이 존중되는 사회에서 경제성장과 안정이 가능했다는 말씀입니다.
도덕법칙에서 멀어지면 질수록 치러야 하는 비용은 더 커집니다. 오늘날 상식 밖의 행동을 하고 있는 검찰, 반성이 없는 거대 언론, 법 위에 군림하고 있는 재벌총수들 등은 과거 도덕법칙을 무시하고 경제성장을 추구했던 것의 결과물입니다. 그들은 정의롭지 못한 권력의 (하위)파트너였고 수족(手足)이었습니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들이 민주화의 ‘최대의 수혜자’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매일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를 외치면서 반칙을 아무렇지 않게 자행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도덕법칙을 무시하고 경제성장을 추구한 결과입니다.
두 번째는 이명박 정부 지지에서 나타납니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은 후보 시절에 검증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도덕적 문제가 있음이 드러났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원래 경제발전이라는 것은 도덕과 무관하다, 도덕적이지 않더라도 경제를 살릴 수 있다’고 생각했던 거 같습니다. 충격적인 사실은 더 엄격한 도덕적 잣대를 들이대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그를 압도적으로 지지했다는 점입니다. 그리스도인들도 도덕법칙과 경제법칙은 별개라고 생각한 것이죠.
그런 선택의 결과를 지금 우리가 보고 있습니다. ‘도덕법칙’이 얼마나 소중한지, 그 법칙을 훼손하는 대가로 우리가 치러야 할 비용이 얼마나 큰지 우리가 목격하고 있습니다.
성경이 말한 100% 도덕법칙을 구현하는 것은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성경이 말하는 도덕법칙에 가까우면 가까울수록 그 사회는 건강하고 풍요로워진다는 점입니다.
“도덕법칙과 경제법칙은 하나!”라는 신앙적 선언을 우리 마음속에 새길 필요가 있습니다. 한국 사회 곳곳에 웅크리고 있는 ‘특권’, 그리고 ‘그 특권으로 인한 반칙’이 한국 사회를 옴짝달싹 못하게 하고 있는 현실을 보면 이런 생각이 더욱 간절해집니다. 그런데 이것은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로 돌아오려는 ‘거대한 회심의 역사’가 있어야 가능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경제문제는 도덕문제이고, 도덕문제는 궁극적으로 영적인 문제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