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한 인권단체가 교도소에서 인문학 강의를 한다고 합니다. 성토모의 지체들 중에서도 누군가 강의 하나를 맡아서 진행했으면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인문학 강의 하면 노숙인과 마약중독자를 대상으로 인문학 교육을 무료로 제공했던 ‘클레멘트 코스’가 생각납니다. 작가이자 교육실천가인 얼 쇼리스(Earl Shories)씨가 시작한 이 강좌는 클레멘트 기념관에서 처음 열려 클레멘트 코스라 불리게 되었습니다. 교육의 기회가 적었던 사람들에게 교육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 외에도 시사하는 바가 많은 사례입니다. 직업교육도 아닌 인문학 강의가 노숙인들의 삶을 조금씩 바꾸었기 때문이죠.
인문학을 공부한다는 것은 단순히 교양을 쌓는다는 것이 아니라 사람의 본질과 태도를 배우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이 학문은 가르치거나 배우는 것이 행하는 것과 일치하는 것을 강하게 요구합니다. 성실을 가르치려면 성실해야 하고, 용기를 가르치기 위해서는 용기있게 살아가는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또, 정직을 가르치기 위해서는 엄격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스스로를 판단해야 합니다. 선생 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요.
여기서 고민이 생깁니다. 성토모를 통해서, 성경의 말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토지법과 공의에 대해서 배운 우리들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에 대한 고민입니다. 또한 어떻게 이것들을 전할까, 어떻게 실현할까 하는 고민들이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서 동일한 고민을 하셨던 선배님들께서 뛰어난 족적들을 남기셨습니다. 그 결과 우리도 이 사상에 대해서 알고 있는 것이겠지요. 조금 더 개인적인 고민을 해봅니다. 저는 <도시>라는 학문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토지법에 기초한 이상적인 도시를 만드는 것이 가능할까요? 이러한 질문에 답하기 위해서 요즘 도시계획사를 뒤적이고 있습니다. 비슷한 고민을 먼저 한 선배를 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러다 전원도시(Garden city)를 주창한 에베네저 하워드(Ebenezer Howard)를 찾아 냈습니다.
산업화 시대 이후 도시의 발전은 늘 선긋기와 나누기로 일관되게 진행되었습니다. 산업과 주거가 나누어지고 도시와 농촌이 분리되어졌습니다. 이러한 분리가 좀 더 좋은 환경을 만들어 줄 것이라 생각했던 것이지요. 그러나 하워드는 다른 생각을 했습니다. 도농이 통합된 도시 형태를 생각했던 것이지요. ‘집적’ 대신에 ‘계획된 확산’을 ‘분해’ 대신에 ‘통합’을 추구하였던 그의 계획안은 ‘그린벨트’와 ‘전원도시’라는 개념으로 영국과 미국을 비롯해 많은 나라의 도시계획에 영향을 끼쳤습니다.
하워드는 물리적인 계획뿐만 아니라는 토지가치 공유에 대해서도 강하게 주장합니다. 그는 토지가 얼마나 중요한지 잘 알고 있었습니다. 21살 되던 해 미국으로 건너가 홈스테드 법을 경험하고 시카고 대화재 이후 도시재건 과정 중에 엄청난 지가 상승을 목격한 그는 토지가치를 공동체가 공유해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그의 ‘균형된 공동사회(Cooperative Quadrangle)'라는 사상의 중요한 흐름중 하나는 전원도시의 토지가치 상승분은 커뮤니티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내용을 ‘지주의 임대료가 사라지는 지점(The Vanishing Point of Landlord's Rent)'이라는 글을 통해 잘 설명해주고 있습니다.
하워드가 이처럼 이상적인 사회를 꿈꿀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좋은 영향을 끼쳤던 선생님(물론 직접 배우지는 않았습니다)과 친구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허버트 스펜서’와 ‘토마스 스펜스’로부터 토지 국유화 개념을 배웠고 어릴 적 목사님으로부터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말씀을 반복해서 들었다고 합니다. 76년 미국에서 영국으로 돌아왔으니 71년에 출간된 <우리 토지와 토지정책(Our Land and Land Policy)>을 통해 헨리 조지의 영향을 받았을 수도 있겠네요. 이 외에도 동시대에 활동했던 많은 사상가, 도시계획가의 영향을 받았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그러나 하워드가 존경받는 이유는 이렇듯 다양한 사상과 이념을 구체적으로 실현하려 했다는 데 있습니다.
<도시>를 공부하면서 느꼈던 답답함은 많은 이들의 계획안이나 구상안들이 자신의 주장과 일치하지 않는 다는 것입니다. 학부시절 스치듯 공부했던 전원도시를 다시 꺼내들며 감사했던 것은 하워드의 사상이 ‘하나님의 도시’를 꿈꾸는 저에게 비교적 모범안으로 다가왔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진행과정의 실패와 현실화 과정의 문제점들로 인해 레치워스와 원윈과 같은 전원도시는 현재 토지가치 공유가 이뤄지고 있지만 않지만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말씀을 가슴깊이 세기고 사회문제와 도시문제 해결에 노력했던 그의 모습만은 제 마음에 강하게 다가옵니다.
배운대로 행하는 것, 누군가를 가르치기 전에 자기 자신을 먼저 가르쳐야 한다는 것. 이것이 실력을 쌓고 학문의 깊이를 더해가는 것보다 중요합니다. 우리가 각자의 분야에서 우리가 하나님께 배운 것들을 이루기 위해 더 많은 고민들을 해야 합니다. ‘이것이 옳다’라고 말하기 위해서는 ‘이렇게 살면 된다’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실천력이 필요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