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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의 길 연재2] 출애굽과 건국(建國)의 신학

작성자 : 희년함께 (220.85.251.***)

조회 : 2,601 / 등록일 : 21-05-24 11:07

[희년의 길 연재2] 

 

 

출애굽과 건국(建國)의 신학

제국의 질서와 맞선 야훼신앙의 희년혁명 

 

 

 

김덕영 / 희년함께 희년실천센터장

 

새로운 나라와 새로운 삶의 출발, 출애굽

 

제국의 질서 밑바닥에서 신음하던 히브리 백성들은 예속된 삶에서 어떤 희망의 노래를 부를 수 있었을까? 그들에게 남아 있었던 것은 아브라함을 통해 이어온 야훼 하나님 이야기 뿐이다. 아브라함과 야곱 그리고 요셉의 하나님이 지금 우리의 신음을 듣고 있다는 이야기다. 이집트 체제하의 히브리 백성들에게 희망은 모세의 갈대상자만큼이나 파리하고 연약해 보이지만 그들의 이야기는 급진적 새로운 질서를 파생시키는 서사로 이어진다. 파라오의 부와 권력 강화에 초점을 둔 제국의 약탈 체제를 벗어나 땀에 대한 마땅한 존중으로 모두가 자신의 노동에 대한 정당한 대가를 누리는 새로운 나라의 삶을 상상하는 것이다. 그 나라는 파라오의 권력을 뒷받침하는 제의 질서와 권력이 아닌 모든 존재가 각자의 땅에서 야훼 하나님을 예배하는 새로운 질서와 수평적 권력의 나라이다. 새 나라는 착취 체제에 얼마나 기생하느냐에 따라 인간의 존엄여부가 주어지는 것이 아닌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모든 인간이 평등한 존재라는 철학을 기본으로 한다. 이 나라의 모든 백성은 자유와 해방의 날이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무화과나무와 감람나무 아래서 자기 땅을 지키고 그 땅의 임대료인 공평과 정의를 납부해야만 한다. 이 나라에서는 제국의 강력한 왕권이 불필요하다. 제국의 약탈 경제와 같이 끊임없는 외부 자원 공급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강력한 군사력이 나라를 지키는 핵심 요인이 아니라 자기 땅에서 노동하는 자유 농민의 건강한 땀방울과 주체적 정신이 나라의 근간을 이룬다. 이것이 출애굽을 단행한 히브리 백성과 모세가 꿈꾼 새로운 나라였다.

 

새로운 나라의 경제제도는 제국의 약탈적 시스템과 비교할 때 가장 대조적인 부분이었다. 경제적 평등이 보장되지 않는 시스템은 결과적으로 기존의 체제와 다를 바 없는 기득권의 교체에 불과하다. 새 나라의 출발로 히브리 백성에게 분명하게 주어진 것은 자기 몫의 땅이었다. 백성에게 조건 없이 토지가 부여되는 경우는 늘 왕조 교체 수준의 체제 전환기에서만 가능한 일이었다. 우리나라 역사만 봐도 1392년 조선의 건국은 1391년 토지 개혁을 건국 주도 세력이 성공적으로 완수하는 것으로 가능할 수 있었다. 조선의 건국 세력이었던 신진사대부와 이성계는 강력한 정치력을 바탕으로 고려 말 토지제도가 문란하여 소작농에게 과도한 부담이 가중되고 있던 상황을 과전법 개혁을 통해 개선하여 가난한 민중의 지지를 받을 수 있었다. 토지분배가 정치 이벤트로 끝나지 않기 위해서는 토지가 분배된 다음의 이야기가 중요하다. 분배된 땅의 형평성을 어떠한 방법으로 지속시킬 수 있는가의 문제이다. 여기서 부각되는 것이 출애굽 공동체의 희년 시스템이다.

 

 

제도화된 출애굽, 희년의 정기적 순환 구조 

 

제국에서 탈주한 히브리 노예들이 세운 나라는 자유와 해방이 지속되는 체제였다. 이를 보장하기 위한 희년 시스템은 철저한 주기적 순환을 통해 핵심 정체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우선 레위 지파를 제외한 모든 지파에게 인구수와 토지의 비옥도를 고려한 공평한 땅 분배가 있었다. 모든 지파는 소산의 1/10을 십일조로 납부해 땅이 없는 레위 지파에게도 동등한 땅에 대한 권리를 제공했다. 이스라엘, 새로운 나라에서는 땅에 대한 권리로부터 소외된 존재가 없다는 것이 기본 출발점이다. 땅 분배는 이스라엘 모든 가문에게 기업으로 제공되어 한 세대뿐 아니라 다음 세대에게 주어진 공동의 소산이라는 의미가 중요했다. ‘토지는 하나님의 것이다.’라는 명시적 선언문을 공표하고 모든 존재가 땅 위에 있는 거류민이요, 청지기임을 분명히 했다. 토지는 일반 상품과 같이 시장에서 제한 없이 거래할 수 없는 차별성 있는 경제요소임을 분명히 한다.

 

희년시스템의 특징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지음 받은 모든 생명은 착취의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땅 사상과 함께 이 철학은 희년 체제 안에 매우 촘촘하게 설계되었다. 매 칠일 안식일 마다 모든 품꾼과 가축에게도 휴식권이 보장되었다. 매 칠년 안식년에는 땅도 안식을 취한다. 안식년은 부채를 지니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면제년으로 부채가 탕감되고 노예에서 해방되는 해이기도 했다. 모두가 새 출발을 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권리를 보장했다. 이후 칠년의 안식년이 일곱 번 도래한 후 50년째인 희년에는 원래 부여된 자기 가문의 땅이 다시 원소유주에게로 반환된다. 그야말로 리셋버튼이 전 사회적으로 시행되는 것이다. 이스라엘 사회에서는 토지의 영구거래가 금지되었고 희년을 기준으로 한 토지의 한시거래만 허용되었다. 토지 한시 매매도 매도자의 재난, 가난 등 특별한 사정으로 인한 것이기에 희년이 도래하기 전이라도 매도자의 친족은 고엘 제도를 통해 무르기의 책임이 부여되었다. 희년이 되기 전에 친족의 땅을 되사주는 것이다. 희년의 정기적 순환 시스템은 제도화된 출애굽으로 볼 수 있다. 출애굽의 자유와 해방 정신을 정기적으로 유지하는 희년 시스템이었다.

 

 

희년체제의 일상화, 문화화를 향한 제의 및 교육 시스템

 

새로운 체제비전은 설계자의 제도와 체제 구상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새로운 나라 백성의 새로운 문화와 삶이 반드시 수반되어야 했다. 이스라엘의 건국 세력은 새로운 체제를 유지하는 근원적 힘은 야훼 신앙을 철저하게 붙들고 새로운 삶을 실천하고자 하는 다수의 깨어있는 히브리 백성의 삶이라고 보았다. 새로운 비전의 담지자인 히브리 백성이 주체적으로 희년시스템의 철학을 공유하고 희년의 삶과 문화를 만들어 가는 것이 중요했다. 이를 위한 장치가 야훼 제의 질서였다. 권력과 부를 독점한 기득권의 권위 확보 수단인 제국의 제의 질서와 달리 이스라엘은 모든 제의 절차를 백성에게 투명하게 공개하고 제의의 초점을 야훼 신앙을 일상화하는 것에 두었다. 야훼 제의의 핵심은 모든 존재가 자신의 존엄을 지키고 자기 자리에서 똑바로 서서 야훼 하나님을 예배하는 것이다. 희년 정신대로 자기 땅을 지키고 자기 땀을 흘리는 존재로 살아가는 것이다. 야훼 신앙의 주체자 이자 자유인인 히브리 백성은 노예를 해방하고 가축과 노동자의 휴식권을 보장하고 땅에 대한 탐욕을 제어하는 것이 가능할 수 있었다. 이스라엘의 제의 질서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의 것이었다. 파라오의 제의 질서가 태양의 아들인 파라오의 신적 권능을 확인하는 지배수단인 것과 대조된다.

 

땅이 부여되지 않는 레위 지파의 중요 역할은 이스라엘 민중의 것인 이스라엘의 제의 질서를 가르치고 실행하는 것이었다. 자신의 권리와 책임을 망각한 백성에게 돌아오는 것은 또 다른 착취와 지배의 역사였다. 다른 지파들이 열심히 자신의 땅을 일구는 만큼이나 레위지파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야훼신앙의 정수와 새로운 체제의 새로운 삶의 의미 그리고 히브리 백성의 책임과 권리를 교육하는데 매진했다. 나라 전체 인구의 1/10이 교육사업에 투자되었다고 보아도 무방하다.  레위지파는 땅이 없더라도 땅의 소산인 다른 지파의 십일조를 통해 땅의 열매를 동일하게 얻을 수 있었다. 새 나라 이스라엘에는 땅에서 소외된 자를 없게 했다. 이스라엘 백성은 제의적 일상을 통해서 새로운 나라 백성으로서 책임과 의무를 기억해야 했고 이 새로운 나라의 비전을 자기 후손에게도 동일하게 가르쳐야 했다. 그것이야말로 감람나무와 무화과나무 아래 안연히 거하며 서로를 초대하는 이상적 삶을 유지할 수 있는 비결이었다.

 

 

출애굽과 희년체제의 전염성

 

출애굽은 인류 최초의 혁명으로도 볼 수 있다. 혁명의 정의가 지배세력의 교체만이 아닌 체제의 근본적 전환이라고 본다면 출애굽은 그 정의에 매우 부합한다. 출애굽을 통해 세운 이스라엘은 이집트의 제국질서와 총체적으로 성격을 달리 했다. 약탈적 경제 시스템이 호혜적 순환 경제 시스템으로 전환되었고 독점적 제의 질서 및 권력 체제가 민중 지향적 투명한 제의 질서와 수평적 정치 시스템으로의 전환을 이루어냈다. 무엇보다 야훼 신앙 철학이 제국의 통치 이념과 근본적으로 달랐으며 민중의 삶과 문화가 차별성을 가지고 있었다. 이러한 전환을 가능하게 한 것은 왕조교체에 따른 일시적 정치 이벤트가 아니라 출애굽의 정신을 어떻게 지속할 수 있는지를 고안한 제도화된 출애굽을 지향했기 때문이다. 출애굽 새로운 질서의 차별성은 당대 고대문화에서 혁명과도 같은 사건이었다. 당대 제국 질서에 포섭되어 있었던 다수의 주변 민중에게 출애굽은 어떤 영향력을 미쳤을까.

 

급진적 정체(政體)의 전환의 소문은 자연스럽게 주변에 민감한 정치적 변화를 야기할 가능성을 가진다. 때문에 이에 가장 예민한 이들은 기존 기득권 유지를 원하는 정치세력이다. 한편으로는 새로운 변화의 공간을 모색하는 집단 또한 승리의 역사를 모방하고 희망의 증거를 발견하고자 하기에 관심이 많다. 2021년 2월 1일 미얀마의 쿠데타 발발로 미얀마의 시민사회는 1980년이 5.18 광주의 민주화운동을 주목했다. 지난한 시간이 지나야 했지만 쿠데타 세력을 단죄하고 5.18의 진실이 알려지고 한국 민주주의 발전으로 이어져 군의 쿠데타가 재발되지 않는 한국을 모델 삼고자 했다. 반면 2017년 한국의 촛불 시민혁명은 중국 집권 정치세력에게 예민한 사항이었다. 권위주의적 정부에게는 시민들의 자발적인 저항과 탄핵정국이 서구 언론의 집중된 관심과 달리 중국 인민들에게 잘 알려지기를 원하지 않는 사건이었다. 

 

이념과 체제의 지향이 다르더라도 민중의 삶에서 급진적 개선이 이루어지는 사건이 발생한 경우도 국가와 사회의 다양한 정치집단의 관심과 긴장을 촉진한다. 1945년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치열한 정치투쟁은 그 양상이 극적으로 드러난 경우다. 1946년 3월 북조선 임시인민위원회는 기존 50%에 육박하는 소작료를 30%로 인하는 토지개혁을 단행한다. 대부분 높은 소작료로 고통 받고 있었던 다수의 농민에게 지지를 받아 북한의 대부분의 지주층이 몰락하게 된다. 이후 무상몰수, 무상분배의 토지개혁이 진행되고 북한 사회주의의 민중지지를 이끌게 된다. 이는 자유진영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남한 정부과 미군정은 남한에도 상존에 있던 다수의 소작농들의 불만을 무시할 수 없었다. 정치적 고려와 기민한 조치로 한국전쟁 발발 직전 1950년 3월 유상몰수, 유상분배의 농지개혁이 단행된다. 해방공간에서 벌어진 양 진영의 농지개혁은 동일한 남북 소작농 민중에 대한 지지를 이끌어내기 위한 사회주의와 자유주의 진영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진행한 체제 경쟁의 사례로 볼 수 있다.

 

출애굽의 사건은 히브리 노예들의 집단 해방사건이다. 또한 이스라엘은 히브리 노예들에 의해 고대 제국과 다른 지향의 체제와 문화를 가진 나라로 세워졌다. 주변 고대 국가들에게 출애굽과 제도화된 출애굽으로서의 이스라엘은 긴장과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혁명적 사건이었다. 입소문에 의존했을 당대의 상황에서도 기층 민중은 히브리 노예들의 이야기와 야훼신앙에 대한 소문에 가슴이 뛰지 않았을까. 민중을 지배하고 있는 지도층은 한층 더 예민하게 출애굽 사건을 예의주시했다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출애굽 히브리 백성이 가고자 했던 가나안 땅은 가장 급격한 정치적 긴장상태에 놓였을 것이다. 출애굽의 종교성이 강조되다 보니 출애굽의 정치적 의미에 대해서 전체적으로 관심이 부족했던 것이 사실이다. 분명한 것은 출애굽의 신학은 종교적 영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체제전환의 분명한 비전과 지향 그리고 새로운 나라의 건설과 새로운 삶의 기획이 동반된 총체적 사건이었다. 그리고 당대는 물론 후대에 출애굽의 비전은 새로운 삶과 나라가 가능하다는 상상력의 원천이 되었다.

 

출애굽 내러티브의 차별성, 야훼와의 시내산 계약

 

출애굽 혁명은 근대 사회주의 혁명의 모티브를 제공할 정도로 급진적 사회 혁명적 요소를 갖추었지만 무엇보다 야훼신앙의 독특한 특징의 차별성을 내포한다. 그 특징은 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지향하는 내러티브로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다. 히브리 노예의 출애굽은 단순 해당시점의 정치 사건이 아니라 인간 존엄성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야훼의 열정을 담지하고 있는 존재들의 시대 초월 이어달리기 대서사시이다. 아브라함, 야곱, 요셉으로 이어지는 인격적 존재의 야훼신앙 고백이 히브리 노예의 집단적 해방사건의 내러티브로 연결된다. 시간을 초월한 야훼신앙은 각 시대의 존재들을 통해 연결되어 동시적 비전을 구현한다. 출애굽 사건도 모세라는 지도자의 야훼신앙 고백을 통해 전체 내러티브의 특징을 보여주는 것과 함께 대서사의 일부로 존재한다. 공평과 정의의 추구로 대표되는 출애굽의 지향은 그 실행 여부의 중요성을 차치하고라도 이스라엘의 정체성의 준거점 역할을 한다. 이스라엘이 야훼신앙의 가깝고 멀고의 여부는 이 준거점의 분별에서 결정이 된다. 향후 이스라엘 신앙의 리트머스 시험지 역할을 하게 되는 예언자들은 출애굽의 정신이 구현된 시내산 계약이 가장 중요한 판단의 기준이었다. 

 

출애굽 백성들은 홍해를 지나 시내산에 집결하여 야훼와 시내산 계약을 체결한다. 이로서 이스라엘은 야훼 신앙을 적극적으로 계승하고 구현하는 내러티브의 주체자가 된다. 제도와 문화를 통한 지속적 새로운 삶의 질서로 나아가지 못한다면 출애굽은 일회적 정치적 사건으로 의미가 축소된다. 새로운 나라는 새로운 제도와 함께 새로운 삶을 실천하는 그 나라의 백성으로 시작될 수 있다. 히브리 백성은 해방을 선물 받은 자유인으로서 책임을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는가. 새로운 땅을 부여받은 백성들이 이집트에서의 삶과는 다른 삶의 가치를 구현해내는 책임 말이다. 가나안 땅의 히브리 백성은 모든 존재가 땀을 흘린 만큼 자기 노동의 결과로 땀의 대가를 가질 수 있도록 자기 땅이 보장되어야 했고, 다른 사람의 땀을 나의 부와 권력의 수단으로 삼지 않기 위해 자기 땅에서 스스로 땀 흘려 성실히 일해야 했다.

 

자기 땅을 가진 시내산 계약의 당사자인 자유 농민은 안식일, 안식년, 희년의 시혜를 기다리는 존재가 아니라 안식일, 안식년, 희년을 적극적으로 실현해내는 존재였다. 자유 농민은 극단적 부의 획득과 누적이 아니라 자기 땀에 대가를 감사한 마음으로 누리는 자족의 삶의 태도가 요구된다. 자유 농민은 야훼신앙의 고백으로서 새로운 출애굽 질서를 수행하고 완성할 책임이 부여 되었다. 보다 더 많은 부를 확보하고 싶을지라도 안식일에는 품꾼과 가축에게 충분한 휴식권을 제공해야 한다. 안식년에는 기존의 부채를 면제해주고 노예에게는 더 이상 노예 신분으로 살지 않아도 된다고 해방을 선포해야 했다. 희년에는 지금 나에게 추가적으로 주어진 토지를 원 소유자에게 반환해야한다. 자유 농민은 이러한 실천을 통해 집 없는 존재, 노예노동에 시달리는 사람, 부채의 수렁에 빠진 사람, 억압에 놓인 모든 존재에 해방을 선포하는 존재로 서게 된다. 반면 땅과 집을 잃어 가족과 함께 거주할 수 없는 눌려 있는 존재들은 출애굽의 경험을 반복적으로 경험한다. 자유 농민은 희년 실천을 통해 자기 욕망의 경계를 확인하고 야훼의 열정을 공감하는 존재로 세워진다. 가난한 자, 눌린 자, 포로된 자들은 출애굽의 감동이 재경험되며 다시 일어날 수 있는 용기를 가지게 된다.

 

 

시내산 계약 파기의 증거, 가난한 자의 호소 

 

출애굽 정신과 지향은 출애굽 정신을 기억하고 시내산 계약을 성실하게 준수하는 존재들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는 것이었다. 가나안 땅에 세워진 이스라엘은 매순간 이집트냐, 하나님 나라냐의 선택을 적극적으로 해야만 했다. 그 핵심에 있는 땅 문제는 이 문제를 추상화에 머무르지 않고 아주 실제적인 것으로 만든다. 이스라엘이 이 땅에 잠시 거하는 거류민의 정체성을 잃고 땅에 땅을 더하고 집에 집을 더하기 시작할 때 시내산 계약은 파기된다. 야훼신앙으로부터 멀어질수록 구체적 삶이 배제된 제사와 예배에 과도하게 몰입하는 양상으로 변질되어 간다. 땅에대한 탐욕으로 숨통이 조여 오고 있는 당대의 또 다른 가난한 자는 다시 야훼를 향해 호소한다. 그 탄식과 신음은 야훼에게 끊임없이 울림이 되어 역사의 심판을 초래한다. 이제 심판의 대상은 파라오가 아니라 공평과 정의의 임대료를 납부하지 않은 출애굽의 주인공 이스라엘이다. 예언자들은 또 하나의 이집트가 되어가는 이스라엘에게 심판을 선포하고 돌이킬 것을 경고한다. 

 

출애굽 정신이 실종되고 희년 비전이 상실됨에 따라 이스라엘 곳곳에 다시금 억압된 자들의 신음이 누적된다. 이들의 눈물과 한숨은 시내산 계약파기의 확실한 증거였다. 계약이 파기된 자리에는 심판과 종말이 엄습한다. 심판의 경고에도 돌이키지 않은 이스라엘은 앗수르와 바벨론에 의해 처참히 짓밟힌다. 야훼신앙으로 절대 멸망하지 않으리라 믿었던 다수의 이스라엘 사람들은 절망했다. 과연 돌이키고자 하는데 어느 지점에서 돌이켜야 하는가. 이 분별은 다시 출애굽 정신과 야훼 신앙 그리고 시내산 계약에서 찾을 수 있었다. 돌아가야 할 지점은 희년이었다. 바벨론과 페르시아의 포로가 된 야훼신앙의 계승자들은 고된 노동이 끝난 후에도 역사적 성찰을 위한 말씀 묵상과 연구에 매진한다. 포기 하지 않고 다시금 새로운 나라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는 비전을 구할 때 역사적 기적을 맛보고 다시 가나안 땅에 귀환할 수 있었다.  

 


자유농민과 군자(君子)의 나라 

 

아브라함과 이삭, 야곱과 요셉으로 이어진 야훼 신앙의 고백은 이 땅의 하나님 나라 모형으로서의 출애굽과 새로운 나라의 건설로 구현되었다. 그 나라는 가나안 땅에서 당대 제국의 질서와 극적으로 대조되는 모습이었다. 왕조 교체의 정치적 이벤트가 아닌 새로운 질서의 항구적 순환 모델을 담아낸 것이 희년질서였다. 이 희년질서가 유지되기 위한 레위지파의 교육, 제의 질서의 일상화는 동일한 의도와 분명한 목적을  가진 총체적 접근 시도로 볼 수 있다. 희년체제의 주체가 된 자유농민은 자신의 기업에서 자신의 땀방울을 흘리며 이 땅에 태어난 모든 존재가 하나님의 형상을 입은 평등한 존재임을 고백했다. 

 

야훼 신앙의 이스라엘 건국 신학은 조선 성리학 철학을 근간으로 한 조선 건국의 구조와 닮은꼴이다. 조선 성리학으로 무장한 신진 사대부들은 고려 말 정체(政體)의 근본 모순인 토지 개혁을 단행하고 지속성있는 합리적 통치 질서를 구현하기 위한 왕정과 재상중심의 관리체계를 구상한다. 체제개혁과 함께 경학을 중시하고 향교를 통해 유교질서의 조선의 일상과 문화를 총체적으로 만들어 나갔다. 성리학의 질서를 구체적으로 담지해내고 실천하는 주체로서 이상적 인간을 군자(君子)로 표방하고 모든 백성이 군자가 되는 성리학 이상사회를 지향한다. 조선 말 정통 성리학자이며 당대의 개혁을 모색하는 일군의 실학자들은 서학에 큰 관심을 가진다. 그들이 접한 성서의 내용 중 출애굽이 단연코 주목되었으리라. 출애굽과 제도화된 출애굽으로서의 희년질서와 일상의 제의 질서를 통한 새로운 사회와 새로운 삶의 기획이 성리학적 조선 설계의 체계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정조시대 남인으로 대표되는 실학자들이 성서의 가치에 눈을 뜬 것은 어찌 보면 그들이 개혁의 출발점으로 삼은 성리학의 합리성, 총체성 그리고 혁명성과 궤를 같이 하고 있는 성서의 내러티브에 주목한 것일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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