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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경제윤리 연재기획14] 중세 암흑기를 밝힌 루터의 경제윤리 / 고영근

작성자 : 관리자 (210.178.67.***)

조회 : 1,042 / 등록일 : 19-03-04 21:13

 

 

 

중세 암흑기를 밝힌 루터의 경제윤리

기독교경제윤리(14) 종교개혁과 희년 사회를 동시에 외친 루터

 

 

 

 


고영근


중세 교회는 만민의 평등한 토지권과 빈민 무이자 대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의 탕감을 명하는 성경 말씀과는 정반대로 뒤로는 몰래 고리대금을 하거나 농노 체제를 옹호하는 지주가 되어 경제적으로 부패하고 타락했다. 한마디로 사회를 개혁하기에는 너무나 탐욕스럽고 무능력한 상태였다.

 

교회가 이 지경이니 그 당시 백성의 삶은 고달프고 피폐할 수밖에 없었다. 역사는 교회가 가장 부패했던 이 시대를 중세 암흑기라고 표현한다. 이렇게 어두운 시대에 성경 말씀과 초대 교회 및 교부들의 가르침으로 돌아가자고 외치면서 중세의 암흑을 밝힌 사람들이 바로 종교개혁자들이다.


종교개혁자들은 성속 이원론과 사제주의라는 종교적 교만과 경제적 부패에 빠져 있던 중세 교회를 개혁하고자 목숨을 걸고 분연히 일어섰다. 대표적인 종교개혁자가 바로 우리가 잘 아는 마르틴 루터와 존 칼뱅이다.


중세 교회가 사실상 고리대금을 하고 있었으며 교회가 지주였기 때문에 농노 체제를 옹호하면서 봉건제를 신적인 질서라고 주장했다. 그러다가 급기야는 구원도 돈으로 사고파는 면죄부를 만들 지경에까지 이르러 종교개혁을 불러일으키게 된다.


돈과 권력에 빠져 타락한 중세 교회를 향해 루터와 칼뱅 같은 종교개혁자들은 성경 말씀과 초대 교회 및 교부들의 가르침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예배와 기도, 사제는 거룩하고 노동은 비천한 것이라는 중세 가톨릭의 성속 이원론과 사제주의를 깬 사람들이 바로 루터와 칼뱅 같은 종교개혁자들이다.


예배와 기도, 사제의 일만 거룩한 게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 맞는 세상의 모든 일이 다 거룩하다는 것이 종교개혁의 알맹이다. 즉 자신의 소명과 직업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는 게 직업 소명설이다. 성속 이원론과 사제주의는 지금 우리 한국교회 안에도 숨어서 교회를 부패시키고 있다. 우리 한국교회는 성속 이원론과 사제주의를 깬 종교개혁자들의 가르침으로 다시 돌아가야 한다.


루터는 사회경제적으로 보수주의자였나?


일반적으로 루터는 종교에서는 개혁적이었지만 경제에서는 보수적이었다고 알려져 있다. 루터는 종교개혁을 펼치기는 했지만 봉건제도를 옹호했고 그 당시 발전하던 상업과 금융업에 대해서는 매우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면서 농부의 삶이 가장 이상적인 삶이라고 말했다.


또 재세례파의 독일농민혁명에 대해 처음에는 우호적인 입장을 취하다가 농민전쟁으로 발전하자 이를 무력으로 진압할 것을 황제에게 요청하기도 했다. 이런 면만을 본다면 루터는 봉건제와 기존 체제를 옹호한 경제적 보수주의자였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다른 면을 살펴보면 루터가 사회경제적으로 보수적이었다고 단순하게 말하기는 어려운 면이 있다.


김유준 교수는 <희년, 한국 사회, 하나님 나라>(홍성사)에서 루터가 1524년에 출간한 <상업과 고리대금업>이라는 논문에서 모세 율법의 십일조와 희년에 대한 설명을 결론 부분에 첨가하였고, 특히 논문의 마지막 부분에서 왕과 제후들에게 토지와 고리대금업에 관한 문제를 의회에서 가장 시급히 다루어야 한다고 강조했다고 말한다.


루터는 중세 교회의 입장과 마찬가지로 고리대금업에 대해서는 반대했다. 특히 루터는 뒤로 몰래 고리대금을 하는 중세 교회를 겨냥한 듯 교회가 만일 고리대금업을 한다면 문을 닫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또 정부는 고리대금업을 금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교회를 당시 새롭게 등장하던 자본주의적 질서에 대조되는 대항 공동체로 이해했다.


사유재산은 인정하지만 절대적 사유재산은 반대


루터는 사유재산에 있어서는 그 당시 재세례파가 사유재산을 부정하고 공산주의적인 사회를 이루려던 것에 반대하여 중세 교회의 가르침을 따라 사유재산을 자연적인 질서로 인정했다. 하지만 초대 교부들의 가르침을 따라서 사유재산은 자기만을 위한 것이 아니며 남는 재산은 이웃을 섬기는 데 사용해야 한다고 가르쳤다.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사유재산은 불의한 재물이 된다고 말하면서 초대 교부들과 동일한 입장을 취했다.


오늘날로 말하면 사유재산은 인정하지만 사유재산은 어느 누구도 침해할 수 없는 절대적인 것이 아니며 가난한 사람이 도처에 널려 있는데도 이들에게 부의 재분배를 하지 않는다면 사유재산은 정의롭지 않다는 것이 사유재산에 대한 루터의 입장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반면 루터는 가난한 사람을 정부가 보살펴 주도록 했고 수도사나 걸인의 구걸을 금했다. 또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웃에게 봉사하면서 일을 해야 하며 일을 할 수 없는 사람은 국가가 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오늘날로 보면 정부가 가난한 사람과 실업자의 복지를 책임지도록 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한편 루터는 상업보다 농업을 중시한 것은 사실이지만 상업을 전적으로 배격한 것은 아니었고 루터가 쓴 <상업과 고리대금업>에서 상업은 필요악이 아닌 필수적인 것이라고 말했다. 반면 가난한 사람을 외면한 채 사치와 과시를 목적으로 하는 해외무역은 불필요하다며 반대했다.


독점은 반대하면서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둘 다 인정


루터는 상품 가격에 대해서는 "일꾼이 그 삯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눅 10:7)"는 예수님의 말씀에 근거해 공정한 가격을 주장했다. 루터는 상품 가격을 정부가 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정부가 이를 하지 않으면 시장에서 가격이 결정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점을 미뤄 보면 루터는 정부와 시장의 역할을 둘 다 인정한 것으로 보인다. 반면 루터는 시장을 인정하면서도 독점이나 폭리, 사재기, 저울추를 속이는 부정직 등을 일삼는 사람은 더불어 살 가치가 없는 고리대금업자이자 강도라고 비판했다. 또 정부가 이런 죄악을 막아야 한다고 말했다.


한편 루터는 당시의 불공정한 가격 및 거래에 대해서는 비판했지만 상업 자체를 비판하지는 않았고, 그리스도인도 상업에 종사할 수 있으며 제품의 원가에 상인의 노력과 위험부담을 포함하여 가격을 매기는 것은 공정하다고 가르쳤다.


이자에 대해서는 영적 왕국에 속한 그리스도인은 성경 말씀에 따라 이자를 받아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면서도 그리스도인이 돈을 빌린 경우에는 이자를 갚아야 한다고 가르쳤다. 또 세속 정부에서는 5% 정도의 이자는 받아도 된다고 말했다. 이자에 대한 루터의 입장은 교회에서는 빈민 무이자 대부와 갚을 수 없는 빚의 탕감이지만 세상에서는 공정거래를 위한 국가의 역할을 강조하는 것이었다.


세상과 교회를 구분해서 생각하는 루터의 신학은 '두 왕국론'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영적인 왕국인 교회는 은총의 법칙이 지배하고 세속 국가는 법으로 다스린다는 것이 루터가 생각한 두 왕국론이다. 루터는 하나님이 교회와 국가를 상징하는 오른손과 왼손으로 이 세상을 다스리신다고 생각했다.


십일조를 통한 지대(토지불로소득)의 사회화를 촉구


한편 루터는 <고리대금업에 관한 긴 설교>에서 지대(토지불로소득)를 추구하는 토지 투기에 대해서는 강하게 비판하면서 지대(토지불로소득)를 환수하는 수단으로 십일조를 강조했다.


루터는 토지 매매를 금하는 희년의 원리를 밝히면서 돈으로 토지를 사는 것이 돈의 본성에 속하지 않는다고 가르쳤다. 또 지대는 참된 소득이 아님을 강조하면서 토지 투기를 하는 사람들은 고리대금업자이자 강도라고 가르쳤다.


루터는 1525년 <기독교인들은 모세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라는 제목의 설교에서 십일조를 통한 단일세를 주장했다. 루터는 당시 십일조 폐지를 주장하던 급진적 종교개혁자와는 달리 십일조는 토지 불로소득을 환수할 수 있는 훌륭한 법이며 십일조를 통해 다른 모든 세금을 없앨 수 있다고 주장했다.


루터는 십일조가 레위지파와 고아, 과부, 나그네 같은 땅이 없는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점을 정확히 인식한 것으로 보인다. 이런 루터의 주장은 지대(토지가치)를 사회가 토지가치세로 환수하여 사회 구성원 모두가 공유하자고 제안한 헨리 조지(Henry George)의 사상과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종교와 경제를 동시에 개혁하려 했지만 한계를 지니기도


루터는 황제가 희년법을 기초로 삼으면 선한 정부를 세울 수 있다고 가르쳤고 희년 말씀을 입법화하여 의회의 최우선 과제로 삼을 것을 위정자들에게 촉구했다. 또 고리대금을 통한 부당한 이자 수취와 토지 투기를 통한 지대 수취를 일삼는 자들이 모세의 율법으로 돌아가야 한다고 외쳤다.


루터가 가르친 기독교경제윤리는 만민의 평등한 토지권을 명하는 희년 말씀과 빈민 무이자 대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빚의 탕감을 명하는 성경 말씀으로 다시 되돌아가야 한다는 것이었다고 요약할 수 있다. 루터는 "세 가지의 회심이 필요하다. 가슴의 회심, 정신의 회심, 그리고 돈지갑의 회심이다"고 가르쳤다.


루터는 성속 이원론과 사제주의라는 중세 교회의 종교적 교만을 개혁하기 위한 종교개혁뿐 아니라 중세 교회의 경제적 부패와 타락도 함께 개혁하려고 일어선 구약의 선지자 같은 종교사회 개혁자였다.


하지만 아쉽게도 루터는 사회경제적인 개혁을 달성하기에는 역부족이었던 것으로 보이며 루터의 종교개혁을 후원했던 사람들이 영주들이었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한계를 지니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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