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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경제윤리 연재기획13] 중세 교회는 경제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나 / 고영근

작성자 : 관리자 (210.178.67.***)

조회 : 2,495 / 등록일 : 19-03-04 21:02

 

 

 

중세 교회는 경제문제에 어떻게 대응했나 

기독교경제윤리(13) 종교개혁의 원인이 된 중세 교회의 경제적 부패와 무능

 

 

 

고영근

 

역사에서는 중세를 주로 암흑기라고 표현한다. 얼마나 어둡고 암울했으면 암흑기라고 했을까? 중세에는 교회가 경제문제에 대해 어떻게 가르치고 대응했을까? 또 중세 이후 자본주의가 발흥하고 발전하는 과정 속에서 자본주의를 뒷받침하고 있던 정신은 무엇일까? 종교개혁을 통해 탄생한 개신교의 경제 윤리가 자본주의에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자본주의 정신과 개신교 윤리 사이에는 서로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막스 베버(Max Weber)가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문예출판사)에서 자본주의 정신에 영향을 끼친 것이 바로 칼뱅주의와 이후의 청교도주의라고 주장한 이래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은 자본주의가 칼뱅주의와 청교도주의에서 나왔다고 믿고 있다. 또 우리나라에서는 막스 베버의 주장을 오용하여 자본주의는 기독교에서 나온 것이며 성경적인 사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마저도 있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막스 베버의 주장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 하나 있다. 그것은 어떤 정신이 물질적인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는 지금까지 논란이 되어 온 주제이다. 즉 물질이 정신을 결정하는 것인가 정신이 물질을 결정하는 것인가라는 논쟁이다. 다른 말로 하면 존재가 의식을 규정하느냐 의식이 존재를 규정하느냐라는 것이다.


잘 알려져 있듯이 칼 마르크스(Karl Marx)는 하부적인 물질적 생산관계와 생산양식이 사회의 발전 단계에서 정치, 법률, 사상 따위의 상부 구조 즉 정신과 관념을 근본적으로 규정한다고 주장했다. 반면 막스 베버는 칼뱅주의나 청교도주의 등의 프로테스탄트 윤리가 자본주의에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했다.


베버는 자본주의 정신과 개신교 윤리가 물질적인 하부 구조 즉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생산양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전제하고 있다. 마르크스와 베버의 생각은 유물론과 관념론 논쟁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물질과 정신은 서로 영향을 미친다


현실의 인간은 단지 유물론적이지도 관념론적이지도 않다. 인간은 육체와 정신뿐만 아니라 영을 가진 영혼육이 통합된 존재라고 성경은 말씀한다. 인간의 육체와 영혼이 분리된 것이 아닌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것처럼 물질과 정신도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다. 따라서 존재와 의식은 서로 영향을 미치면서 서로를 규정한다.


정신이나 윤리가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생산양식에 영향을 미치기도 하고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생산양식이 사람들의 정신과 윤리에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현대사회의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정신과 영혼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 또 물질 만능주의라는 정신이 물질적인 자본주의 생산관계와 생산양식에 얼마나 많은 영향을 끼치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다.


그렇다면 기독교와 자본주의 발전 과정 사이에는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먼저 자본주의가 본격적으로 발흥하기 전의 발전 과정을 짚어 볼 필요가 있다. 또한 자본주의가 발흥하기 전후와 발전 과정 속에서 중세 교회는 어떠한 역할을 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종교로 사회를 지배한 암흑기의 중세 교회


16세기까지 중세 교회는 현대의 자본주의가 추구하는 물질적 부의 무제한적인 추구를 죄악시하면서 그 당시의 봉건제를 옹호했다. 중세 교회는 신적인 체계를 통해 모든 인간 생활을 영적으로 다스리면서도 봉건적 사회구조 속에서의 계급 관계를 유기체적 연대를 강조하는 사회 이론으로 정당화했다.

 

16세기 이전에는 대규모의 임노동자를 필요로 하는 산업이 발달하지 못했기 때문에 경제문제에 있어서 교회의 역할은 기껏해야 농부와 소상공인들에게 돈을 빌려 주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고리대금 문제와 상품에 대한 정당한 가격에 관한 문제 등을 다루는 것이 고작이었다. 즉 정당한 임금에 대한 문제보다는 정당한 가격과 고리대금의 문제 등이 가장 중요한 경제적 이슈였다는 것이다.

 

당시의 경제는 소규모 자급자족 체계였으나 봉건적인 위계질서 속에서도 도시와 상업 경제가 성장하면서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려는 행위를 중세 교회는 도덕적 원칙에 따라 철저히 견제하고 다스리면서 세속은 여전히 교회에 종속되었다. 즉 근대 경제가 경제 행위에 대한 정당성을 경제적 편의에서 찾은 반면 중세 교회는 도덕적 권위를 더 우선시하였다는 것이다.

 

하지만 중세 교회는 개인 간의 고리대금과 상품 매매 등과 같이 사적인 금전 거래와 상업 활동에서 발생하는 도덕적 문제에 대해서만 관여했고 제도나 구조의 문제는 건드리지 않았으며 교회의 도덕률과는 거의 무관하게 존재하고 있었다.


교회는 국제간의 금융 시장에서 벌어지는 금융 관행에 대해서는 침묵했으며 사실상 최대의 고리대금업자가 바로 교황청이었다. 아울러 교회는 최대의 지주로서 봉건제도를 불변의 사회질서로 옹호했다.

 

개혁을 하기엔 너무 탐욕적이고 무능력했던 중세 교회


교회가 기반하고 있는 물적 토대가 이러한 상태였기 때문에 중세 교회는 보수적일 수밖에 없었다. 즉 세속 경제는 교회의 도덕률에 철저히 종속되어 지배당하는 것처럼 보였으나 오히려 교회 자체의 경제문제는 세속적이었고 자기 자신에게는 높은 도덕률을 적용하지 않는 위선자들이었다.


고리대금에 관한 문제나 농노제에 대한 문제는 개인적 차원에서만 다루어질 뿐 제도적 차원에서의 비판이나 개혁 운동으로는 결코 이어지지 않았다는 점이 중세 교회가 경제문제에 대해 취한 한계였다. 사실상 교회가 최대의 고리대금업을 하고 있었으며 농노가 중세 교회의 대부분의 부를 생산하고 있었기 때문에 농노 체제를 반대한 성직자는 거의 없었다.


아퀴나스를 포함한 거의 모든 중세의 신학자들은 농노제를 불변의 것으로 가정하고 옹호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독일과 영국에서는 농민들이 반란을 일으켰으나 국가와 한 몸인 교회는 이를 잔인하게 진압했다. 훗날 농노제가 폐지된 것도 기독교보다는 프랑스혁명의 인도주의적 자유주의에 많은 빚을 지고 있었다고 한다.


이처럼 중세의 교회는 사적인 고리대금이나 상품 매매와 같이 개인적인 경제생활에 있어서는 윤리적인 훈계 등으로 세속을 다스리는 것처럼 보였으나 교회 자체가 세속적이고 위선적인 경제생활을 하였고 기존의 사회구조와 제도를 옹호하는 기득권이었다.

 

따라서 중세 교회는 전통적인 가치를 부인하는 것을 모두 악하게 규정하고 변화를 거부하는 보수성을 띨 수밖에 없었다. 또한 세상에서 벌어지는 새로운 경제문제들에 대해 어떠한 적절한 대응도 할 수 없는 무능력한 상태였다. 한마디로 중세 교회는 너무 탐욕적이고 무능력했다.


중세 교회의 경제적 부패는 종교개혁의 모판


16세기의 경제 혁명이 일어났던 당시에는 베니스 등의 이탈리아 도시가 점차 몰락하고 남부 독일의 도시들과 포르투갈과 스페인이 흥왕하기 시작했다. 중세의 농촌 사회는 농민전쟁의 여파로 몰락의 길을 걸었으며 광산과 섬유 등의 영역에서 자본주의적 기업이 발흥하여 상업적 기업이 국제적으로 흥성했다.


16세기는 유럽 문명의 구조 자체가 변화를 겪는 시기였으나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경제문제에 있어 기득권을 지키려 하면서 아무런 사회 개혁을 하지 못하는 무능력한 상태였다. 16세기 후반에 이르러서는 정치 이론과 사회윤리를 포괄하여 왔던 중세 교회의 신학적 틀이 무너지기 시작했고 중세 교회는 점점 더 세속화되었다.


이 당시에는 계시보다는 이성이, 종교적 권위보다는 경제적 편의가 점차 세속의 모든 문제들을 가르는 기준이 되어 갔다. 17세기에 이르러서는 민족국가가 종교에서 분리되고 세속 국가의 모양을 띠면서 사회의 이원성이 확립되었다.


그러면서 과거 중세 교회가 가지고 있던 사회적 기능들이 국가로 이전되었고 중세 교회가 주장했던 유기체적 질서 이론은 국가의 분리 가능한 기계적 사고로 대치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교회보다 국가가 더 힘을 얻게 되고 국가는 문명과 번영의 수호자로서 우상화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교회는 사회문제와 사회도덕의 문제에 있어 최종적 권위로서의 위치를 잃고 만다.


이처럼 근대 자본주의가 발흥하기 전후의 상황에서 중세 교회는 세상에 대해 아무런 대응을 하지 못하는 부패하고 무능력한 모습을 보이면서 그저 기득권을 지키기에 급급한 모습이었다. 이런 암흑 같은 시기에 일어난 종교적이고 사회경제적인 운동이 바로 종교개혁이다. 다음 글에서는 종교개혁자들이 외친 기독교경제윤리에 대해 살펴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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