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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경제윤리 연재기획8] 기독교의 분배적 정의란 무엇인가 / 고영근

작성자 : 관리자 (210.178.67.***)

조회 : 1,648 / 등록일 : 19-03-04 20:34

 

 

 

기독교의 분배적 정의란 무엇인가
기독교 경제 윤리(8) 모두에게 평등한 토지권과 노동권을

 

 


고영근


정의(正義, Justice)란 무엇인가? 국어사전에서는 정의(正義)를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 개인 간의 올바른 도리 또는 사회를 구성하고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라고 정의(定義)하고 있다. 그렇다면 무엇이 진리에 맞는 올바른 도리이고, 개인과 사회의 공정한 도리일까? 정의의 구체적인 내용은 어떤 것일까?


정의는 크게 신학적인 정의와 일반적인 정의로 나눌 수 있다. 먼저 신학자들이 말한 정의를 살펴보자. 자연법적인 윤리를 주장하는 에밀 브루너는 정의를 창조 질서에 따른 자연법이며 각자에게 마땅한 몫을 돌리는 것이라고 말했다. 현실주의적인 윤리를 주장하는 라인홀드 니버는 정의는 힘의 균형이며 현실에서 정의의 집행자인 국가가 조정과 절충, 타협을 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존재론적인 윤리를 주장하는 폴 틸리히는 존재하는 모든 것들 안에는 내재적으로 존재로서의 요구가 있으며 이 요구를 인정하고 만족시켜 주는 것이 정의라고 말했다. 하나님나라 윤리를 주장하는 판넨베르크는 하나님나라와 그 나라의 정의가 정의의 근거이자 정의의 완성이며 사랑이 진정한 정의를 달성한다고 말했다. 영역 주권적인 윤리를 주장하는 아브라함 카이퍼는 창조 세계(우주론적인 질서)의 회복이 정의이며 각 영역들 간의 정의는 서로 다른 영역 주권이라고 말했다.


정의와 사랑은 무슨 관계일까


사랑과 정의와의 관계에 대해서도 신학자마다 의견이 서로 다르다. 로마가톨릭은 정의의 기반은 자연법이며 정의는 사랑에 의해 보완된다고 가르쳤다. 마르틴 루터는 사랑은 사적 영역이고 정의는 공적 영역이라고 주장했다. 라인홀드 니버는 정의는 사랑의 가장 높은 표현이며 사랑과 정의는 변증법적 관계에 있다고 주장했다.


폴 틸리히는 정의가 없는 사랑은 등뼈가 없는 몸과 같다고 말했다. 조셉 플레처는 사랑과 정의는 같은 것이며 정의는 실행된 사랑이라고 주장했다. 에밀 브루너는 사랑과 정의는 완전히 구별된 것이며 필요로 하는 영역이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신학자들이 주장하는 사랑과 정의와의 관계는 크게 사랑과 정의는 같은 것, 사랑과 정의는 다른 것, 사랑과 정의는 서로를 필요로 하거나 보완 관계에 있는 것이라는 세 가지 의견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정의에 대한 정의(定義) 중에서 어떤 게 진짜 정의일까? 신학적 정의는 대부분 이렇게 추상적이기 때문에 정의에 관한 현실의 논의에서는 크게 주목받지 못한다. 특히 분배적 정의의 영역에서는 더욱 그렇다. 그렇다면 신학자들이 말하는 정의가 아닌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정의는 과연 무엇일까?


성경이 말씀하는 정의란 무엇인가


성경에서는 많은 경우 공의를 뜻하는 히브리어 미쉬파트와 정의를 뜻하는 히브리어 체데크가 '버터 바른 빵(bread and butter)'이라는 단어처럼 '공의(공평)와 정의'라는 한 단어로서 즉 중언법(hendiadys, 二詞一意)으로 사용된다.


크리스토퍼 J. H. 라이트(Christopher J. H. Wright)는 <현대를 위한 구약윤리>(IVP)에서 "그는 공의와 정의를 사랑하심이여, 세상에는 여호와의 인자하심이 충만하도다(시 33:5)"라는 말씀을 대표적으로 인용하면서 "공의와 정의는 구약성경에서 '가장 큰' 단어 두 개를 하나로 묶고 있다"고 말한다.


구약 신학자인 김근주 교수는 성경에서 미쉬파트(공의)와 체데크(정의)는 '공평과 정의'로 해석하는 것이 좋고, 정의(체데크)는 마음을 같이하는 것(동의하는 것)과 연결되며 공평(미쉬파트)은 하나님의 법도에 근거해 이루어지는 올바른 사회 질서를 가리킨다고 말한다. 그렇기 때문에 성경에서는 공평(공의)이 문맥에 따라 법, 관습, 제도, 규례, 재판, 판결, 심판, 구원까지 넓은 영역의 의미를 지니게 된 것이라고 김근주 교수는 설명한다.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마음을 같이하고 순종하는 사람들(대표적으로 아브라함)에게 의롭다고 인정하신 것이 바로 정의(체데크)를 의미한다는 말이다. 하나님께 자신의 마음을 완전히 같이하고 죽기까지 순종하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다. 따라서 우리의 의가 아닌 예수님의 정의(의)를 통해 우리가 구원을 얻게 되었다. 우리는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예수님께 우리의 마음을 같이하고 순종할 때 정의롭다(의롭다) 인정받고 구원을 얻는다는 말이다.


김근주 교수는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에 마음을 같이하여 따르는 것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인간의 의로움이고 인간의 처지를 보고서 하나님께서 불쌍히 여기시고 바로잡으시고 건지시는 것이 하나님의 의로움이며 그래서 많은 경우 하나님의 정의(체데크)는 하나님의 구원과 같은 의미를 지닌다(사 56:1, 62:1)"고 설명한다.


성경이 말씀하는 정의와 사랑과의 관계는


또한 김근주 교수는 "이웃에 대해 정의를 행한다는 것은 단지 불의를 보고 참지 못함만이 아니라 다른 이의 어려운 처지에 대한 긍휼이 우선이고 그래서 일반적인 정의 개념에서 구약의 정의(체데크)는 긍휼이 포함된 개념"이라고 말한다. 아울러 구약에서 공평을 의미하는 미쉬파트도 인애와 자비를 의미하는 헤세드(hesed)와 함께 쓰이는 것을 볼 수 있고, 공평과 정의는 단지 법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그 안에 담겨 있다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는 분리될 수 없고 인간의 사랑과 정의도 분리될 수 없다는 것이다. 이웃의 고통을 보고 아파하며 사랑하는 마음에서 그들을 돌보고 그들이 겪고 있는 고통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법과 제도를 바꾸는 데까지 나아가는 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정의라는 말이다.


또한 "의와 공의가 주의 보좌의 기초라(시 89:14)"는 말씀과 "구름과 흑암이 그에게 들렸고 의와 공평이 그의 보좌의 기초로다(시 97:2)"는 말씀을 보면 공평과 정의는 단지 신도들의 사회적 책임 수준을 의미하는 것이 아닌 하나님나라의 핵심을 뜻한다(시 99:4, 렘 9:24, 호 6:6, 시 72편)고 김근주 교수는 말한다.


아울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른 것도 바로 공평과 정의를 행하도록 하기 위함(창 18:18~19)이었으며 이렇게 중요한 성경의 공평과 정의는 공평과 정의를 행한 다윗(삼하 8:15)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여라(마 6:33)"고 말씀하시는 예수님께로 이어진다(사 9:7, 렘 23:5~6)고 김근주 교수는 강조한다.


요약하면 성경이 말씀하는 공평과 정의는 하나님나라의 핵심이고, 사랑과 정의는 분리될 수 없으며,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것은 신도의 사회적 책임 수준을 넘어서는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신앙의 알맹이라는 것이다.


공평과 정의를 행하는 삶은 공평과 정의를 사랑하시고 행하시는 하나님을 닮는 것(imitatio Dei)이자 하나님나라를 이루는 삶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사랑하셔서 자신의 유일한 아들을 죽이시면서까지 공평(공의)과 정의를 이루신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과 사람을 사랑하는 공평과 정의의 삶을 살아야 한다.


공평하고 정의로운 분배적 정의는 무엇인가


그렇다면 성경이 말씀하고 있는 공평과 정의를 현실의 구체적인 정의에 어떻게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특히 현실의 분배적 정의에 대해 어떻게 구체적으로 적용하고 실천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는 현실의 부를 분배하는 문제에 대해서도 구체적인 분배적 정의를 말씀하셨을까?


먼저 성경이 말씀하는 공평과 정의를 현실의 분배적 정의에 적용하기 전에 여러 정의의 영역을 살펴보자. 정의에는 먼저 어떤 사람이 잘못한 것에 대해 마땅한 대가를 치르게 하는 응보적 정의(Retributive Justice)가 있다. 사법적 정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최근에는 잘못에 대한 단순한 처벌이 아닌 가해자와 피해자의 회복을 목적으로 하는 회복적 정의(Restorative Justice)도 주목받고 있다.


다음으로는 어떤 존재에게 합당한 것을 그의 존재와 행위에 비례적으로 주는 것, 즉 한정된 자원(예를 들어 토지, 자본, 교육권, 시민권, 정치적 지위와 권력, 안전, 건강권, 명예 등)을 공정하게 분배하는 문제에 관한 분배적 정의(Distributive Justice)가 있다. 경제적 정의가 여기에 해당한다.


각자가 합당을 몫을 받은 근거는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라는 사실에서 나온다. 따라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존엄한 존재가 아닌 단지 우연히 발생하여 진화된 동물에 불과하다면 인간의 평등한 생존권에 대한 근거는 사라지고 적자생존과 약육강식의 세상은 어쩔 수 없는 자연법칙이라는 잘못된 결론에 빠지게 된다.


역사적으로 실행되거나 주장된 분배적 정의는


역사적으로 분배적 정의는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나타났다. 먼저 아리스토텔레스는 분배적 정의를 모든 사람에게 각자 합당한 몫을 돌리고 덕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라고 말했다. 제레미 벤담이나 존 스튜어트 밀 같은 공리주의자는 최대 다수가 행복한 것이 정의라고 주장했다.


공리주의에 반대한 자유주의자 존 롤즈는 사회의 이익이 아무리 커도 개인의 자유를 부정의하게 침해해서는 안 되고, 사유재산과 시장경제를 인정하면서 재분배를 통해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의 수혜가 가도록 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의 원조인 아담 스미스는 보이지 않는 손(시장)을 따르고 토지와 자본에 대한 사유재산을 인정하면서 개인의 공로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했다. 자본주의에 반대한 공산주의자 칼 마르크스는 생산수단(토지와 자본)을 공유로 하고 능력에 따라 생산하여 필요에 따라 분배하는 것이 정의라고 반격했다. 지난 20세기는 바로 이런 자본주의와 공산주의의 피비린내 나는 싸움으로 얼룩져 있다.


자유 지상주의자인 로버트 노직 같은 사람은 각자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자신의 자유를 누리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했다. 최근 우리나라에서 많은 관심을 받았던 <정의란 무엇인가?>의 저자이자 공동체주의자인 마이클 샌델은 사회 공동체의 공동선과 덕을 추구하며 사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했다. 사실 샌델의 주장은 아리스토텔레스의 덕론(德論)과 목적론적 윤리의 21세기 버전이다.


신칼뱅주의자이자 네덜란드의 수상인 아브라함 카이퍼에게 영향을 받은 마이클 월쩌는 가치의 공정한 분배가 각 영역에 따라 다원적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했다. 마지막으로 성경의 희년 사상을 현대적으로 적용한 지공주의자 헨리 조지는 모든 사람에게 토지 공유나 토지 가치 공유를 통해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한 후 각자가 노동한 결과를 최대한 보장하는 것이 정의라고 주장했다.


희년 사상은 모든 정의론을 통합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토지권과 자신이 땀 흘려 노동한 열매를 보장하라는 성경의 희년 사상은 아리스토텔레스가 말한 각자에게 합당한 몫을 돌리는 것이고, 공리주의자가 말한 최대 다수가 행복할 수 있는 길이다. 또 롤즈가 말한 대로 개인의 평등한 자유를 보장하면서 사회가 만들어 낸 토지 가치로 사회의 최소 수혜자에게 최대 수혜가 가도록 만들 수 있다.


토지에 대한 평등한 권리와 노동의 결과를 보장하면 자유 지상주의자가 말한 대로 각자가 타인의 자유를 침해하지 않으면서 최대한 자신의 자유를 누릴 수 있다. 또한 이렇게 하면 공동체주의자가 말한 대로 사회 공동체의 공동선과 덕을 세울 수 있다.


아울러 하나님의 선물이자 자연물인 토지(가치)는 공유하고 노동의 결과이자 인공물인 자본을 사유하는 희년의 지공주의 사상은 토지와 자본을 모두 사유하고 정부보다 시장을 우선하는 자본주의와 토지와 자본을 모두 공유하고 시장보다 국가를 우선하는 공산주의를 화해시키고 통일할 수 있는 평화의 대안이다.


결론적으로 말하면 모든 사람에게 평등한 토지권과 노동의 열매를 보장하는 희년의 지공주의 사상은 거의 모든 정의론을 통합하여 "정의와 평화가 입 맞추게(시 85:10)" 만드는 화해와 평화의 정의론이다.


이런 지공주의 사상은 모든 사람에게 토지(가치) 공유를 통해 평등한 토지권을 보장하고, 노동한 열매를 보장한 후에도 어쩔 수 없이 발생하는 사회적 약자는 국가가 복지를 통해 제도적으로 지원하고 시민 사회와 종교계, 개인은 자발적으로 돕는 다양한 형태의 복지국가와도 통합될 수 있다.


공로, 평등, 필요 무엇이 정의인가


역사상 여러 분배적 정의가 존재했지만 분배적 정의는 크게 각자의 공로에 따라 받는 공로적 정의(Meritorious Justice), 모두가 평등하게 받는 평등적 정의(Egalitarian Justice), 각자의 구체적인 필요에 따라 받는 필요적 정의(Need Justice) 세 종류로 나눌 수 있다.


공로적 정의만을 강조하면 능력과 운에 따른 불평등이 발생한다. 반면 평등적 정의와 필요적 정의만을 강조하면 노력하려는 의욕이 줄어들거나 사라질 수 있다. 따라서 세 가지 정의 중에서 한 가지 정의만을 강조하는 것은 위험하고 여러 문제가 발생한다.


성경에서는 대표적으로 "누구든지 일하기 싫어하거든 먹지도 말게 하라(살후 3:10)"는 말씀과 "일꾼이 자기 먹을 것을 받는 것이 마땅하다(마 10:10)"는 공로적 정의도 나온다. 반면 모두가 똑같이 받은 구약의 만나 사건과 "나중 온 이 사람에게 너와 같이 주는 것이 내 뜻(마 20:14)"이라는 평등적 정의도 나온다. 또 "각 사람의 필요를 따라 나누어 주었다(행 2:45, 4:35)"는 필요적 정의도 나온다. 따라서 공로적 정의와 평등적 정의, 필요적 정의는 서로 균형을 이뤄야 한다.


인생의 달리기 시합에서 무엇이 공정한 것인가


정의의 종류는 출발과 과정, 결과로도 나눌 수 있다. 각자의 인생을 달리기 경주라고 상상해 보자. 모두가 똑같은 출발선에서 평등하게 출발하여 아무도 반칙을 하지 않아 과정이 평등했어도 결과는 모두가 다를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과연 무엇이 정의일까?


어떤 사람은 출발과 과정이 평등했다면 결과가 불평등한 것은 인간이 어쩔 수 없는 것이며 결과를 그냥 인정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불평등을 인정하는 입장이다. 어떤 사람은 출발과 과정이 평등했어도 결과가 불평등하면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해 다른 기회(예를 들어 잘 달릴 수 있도록 달리기 교육의 기회를 주거나 다시 한 번 더 경기하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기회의 평등과 또 다른 기회를 주어야 한다는 입장이다.


또 어떤 사람은 출발과 과정이 평등했어도 결과가 불평등하면 불평등을 없애기 위해 (예를 들어 달리기 시합에서 받은 상금을 세금으로 거두어 재분배하거나 일등은 출발선 뒤에서 달리든지 꼴등은 출발선 앞에서 달리는) 결과의 재분배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즉 기회의 평등과 결과의 재분배 혹은 평등화를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세 가지 입장 중에서 어떤 게 공정(fair)한 정의일까? 분배적 정의에 대한 입장은 크게 이 지점에서 서로 엇갈린다. 세 가지 입장 중에서 사람마다 생각이 서로 다르다. 기독교인들도 마찬가지다. 그렇다면 분배적 정의는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것일까? 세 가지 정의 중에서 무엇이 정의인지 답하기는 어렵지만 적어도 우리 모두가 암묵적으로 동의한 것이 있다. 바로 기회는 모두에게 평등하게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정의의 출발은 평등한 토지권과 노동권, 교육권 보장부터


그렇다면 모든 사람에게 주어야 할 기회의 평등은 구체적으로 무엇일까? 성경은 모든 사람에게 토지에 대한 권리와 일할 권리를 보장하라고 말씀한다. 현대 경제학자들도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려면 기본적으로 토지와 노동, 교육에 대한 권리를 평등하게 보장해야 한다고 말한다. 따라서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는 첫 출발은 평등한 토지권과 노동권, 교육권 보장이다.
 
하나님께서 만드셔서 모든 인류에게 베푸신 토지(노동의 대상물)에 대한 평등한 권리는 기회의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기초이며 공로적 정의, 평등적 정의, 필요적 정의 모두에서 필연적으로 도출된다. 정의의 시작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여 모든 인류에게 베푸신 평등한 토지권을 회복(보장)하는 것에서부터 시작된다.


토지에 대한 평등적 정의와 노동의 결과에 대한 공로적 정의, 사회적 약자에 대한 필요적 정의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회가 만들어 낸 토지 가치 즉 토지에서 발생하는 토지 불로소득을 사회가 거두어 평등적 정의와 필요적 정의를 달성하는 데 쓰고, 노동의 결과는 최대한 보장하여 공로적 정의를 달성해야 한다. 이렇게 하면 자유와 평등, 효율과 형평을 둘 다 달성하면서 분배적 정의를 이룰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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