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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이란 무엇인가2] 희년의 경제, 희년적 사회를 구상하는 전강수 교수

작성자 : 관리자 (175.211.189.***)

조회 : 1,980 / 등록일 : 19-02-27 15:59

[희년이란 무엇인가? - 희년함께 연재 기획 인터뷰1]

 

 

 

희년의 경제, 희년적 사회를 구상하는 전강수 교수 

 

 

 


전강수 / 희년함께 공동대표

 


'희년이란 무엇인가' 연재 인터뷰 두 번째 분은 희년함께 공동대표이신 대구가톨릭대 경제금융부동산학과 전강수 교수님입니다. 전강수 교수님은 한국의 토지정의운동, 희년운동에 기둥같은 역할을 해주셨고 현재도 강의와 집필 등을 통해 희년적 토지제도를 전파하고 계십니다.  

 

교수님의 소개와 하고 계신 일에 대한 소개 부탁드립니다.

 

현재는 대구가톨릭대 교수이고 1998년부터 2004년까지 성경적토지정의를 위한 모임(이하 성토모, 현재 희년함께) 회장을 했지요. 그리고 2004년, 2005년에 경제정의실천연합(이하 경실련) 토지주택위원장을 했어요. 경실련 운동을 하면서 시민단체가 어떻게 움직이는지 아주 구체적으로 봤죠. 그리고 토지정의시민연대가 2005년 2월에 만들어지고 2006년부터 정책위원장을 맡아서 했습니다. 그러다가 2007년에 토지+자유연구소를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09년에 운동 일선에서 물러나서 지금은 교수로 글 쓰고 가르치고 페이스북하면서 지내고 있습니다. 

 

쥬빌리교회를 섬기시고 계시는데 소개 부탁드립니다. 

 

2004년에 교회 설립이 되었는데 설립할 때의 문제의식은 성토모 활동을 전폭적으로 지원하자는 거였어요. 몇 년 동안 그런 일을 했었죠. 그런데 지금은 성격이 조금 바뀌어서 작은 가정교회로 모여서 예배를 드리는데 오히려 그런 문제의식을 내려놓고 나니까 훨씬 교회다워졌어요.


어떻게 보면 굉장히 실험적인 교회 형태인데요. 일단 목회자가 없으니까요. 목회자가 없다는 것에 대해서 멤버들도 처음엔 좀 당황했고 저도 쥬빌리교회에서 리더인 셈이라 신학을 해야 하는 건가라는 생각을 하고는 했습니다. 그런데 요즘은 그게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요. 지난 몇 년 동안 쥬빌리교회에서 신앙생활을 하면서 큰 자유를 경험했어요. 예전에 제가 교회에 다니면서 겪었던 어려움들이 여기서는 하나도 문제가 되지 않아요. 예를 들면 십일조를 할 것인지 말 것인지의 논쟁을 벌이거나, 목회자의 역할을 어디까지로 볼 것인지 등 그런 문제들을 가지고 논쟁할 필요가 없어요. 재정적으로도 무척 자유롭고요. 그래서 우리가 기존에 당연하다고 생각하던 것들을 어쩌다 보니 못 갖추게 되었는데, 그러고 나니까 굉장히 자유로워졌어요. 자유롭다고 해서 형식을 갖추지 않느냐? 그런 것은 아니고요. 그렇다고 목회자가 없으니까 너도나도 똑같다고 질서 없이 하는 것도 아니고요. 자연스럽게 제가 리더가 되었지만 저를 무시하지도 않고 그렇다고 저를 추앙하지도 않아요. 그래서 저는 개인적으로는 참 좋아요.


지금의 한국교회의 구조로는 더 이상 힘들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요. 그렇다면 하나님은 어떤 교회를 원하실까 하는 생각을 했어요. 지금 상황에서 정말 대안이 될 만한 교회가 나오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유럽의 교회처럼 몰락하지 않을까? 그 분수령에 지금 와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합니다. 쥬빌리교회는 한국교회를 개혁하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이 소박하게 모였지만 ‘이 형태가 하나의 대안이 아닐까’라는 막연한 느낌이 있지요. 그렇다고 해서 이걸 열심히 알려서 ‘당신들도 그렇게 하십시오’라고 운동을 하고 싶은 생각은 전혀 없어요. 다만 지난 몇 년 동안 이러한 경험을 하고 있다고 봅니다. 많이 자유롭고 또 희망이 느껴진다고 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즐겁게 하고 있습니다.


교회에 있어서 목회자의 역할이 중요하지 않을 수는 없겠지만 목회자에게 과도하게 권한이 집중되는 등 변질된 모습들이 많이 보입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쥬빌리교회의 실험이 한국교회 상황 속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것 같습니다.

 


저는 개인적인 정체성이나 성격은 굉장히 보수적인 사람이에요. 그런데 자꾸 이상하게 제가 놓이는 객관적인 위치가 굉장히 래디컬한 쪽으로 비치게끔 되어버렸는데요. 소위 개혁적인 목회자들하고도 얘길 하다가 ‘목회자에게 과도한 권한이나 의미부여가 가고 있는 거 아닙니까? 그럴 필요가 있습니까?’라고 하면 목회자들이 경계를 해요. 그러니까 개혁이든, 보수든, 이미 형성된 목회자의 권위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면 경계를 합니다. 이게 참 큰 벽이구나라고 느끼고 있지요. 그러나 제가 거기에 도전하고 싶은 생각은 없어요. 저는 이렇게 교회생활하면서 사는 거지요.

 

어떻게 희년에 관심을 가지시게 되셨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1992년에 1년 동안 일본에 공부하러 갔어요. 학위논문을 마무리할 즈음이었는데 저를 전도했던 교수님이 계셨는데 그분이 그때 그런 얘기를 했어요. 효성여대(현재 대구가톨릭대) 경제학과가 기독교경제학의 본산이 되면 좋겠다고 하시더라고요. 그즈음 제가 예수 믿게 되면서 학문을 통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길이 뭔지 한창 고민했지요. 그리고 학위 논문 마치고 기독교경제학 공부를 시작을 했습니다. 처음에 우리가 읽은 책이 도널드 헤이(Donald Hay)라는 사람이 쓴 「현대경제학과 청지기윤리」였습니다. 그 책을 공부를 하면서 번역을 했지요. 저와 한동근 교수님, 조상국 교수님과 번역을 해서 IVP에서 출간되었습니다. 처음에 세 명이 모여서 공부와 번역을 했는데 대구권에 있는 크리스천 교수님들에게 알려져서 여러 교수님들이 합류했습니다. 그것이 헨리 조지 연구회(현재 토지정책학회)의 출발입니다. 


그 책을 마칠 즈음에 대천덕 신부님이 "이거 번역하시오. 너무 좋은 책입니다."라고 하시면서 From Wasteland to Promised Land라는 책을 조상국 교수님에게 보내왔어요. 지금은 「희년의 경제학」(대한기독교서회 출간)이라고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이 책이 어떤 내용인지도 모르고 멤버들이 읽었어요. 읽다 보니까 그 책이 헨리 조지의 사상에 대해서 분석한 책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그걸 다 번역하면서 읽었어요. 참 무식하게 했죠. 그런데 그 책을 번역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 첫 인상이 신부님처럼 경건해 보이는 분이 한 분 왔어요. 그 분이 김윤상 교수님(경북대 행정학과)이었습니다. 김윤상 교수님이 마지막 부분을 번역을 했습니다. 책은 「새로운 해방의 경제학」이라는 이름으로 CUP에서 출간되었습니다(「희년의 경제학」은 나중에 그 책을 전면 재번역해서 출간한 것입니다). 그 책을 번역하면서 헨리 조지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 헨리 조지의 사상을 좀 더 알고 싶어서 그가 쓴 「진보와 빈곤」을 공부했습니다. 우리가 「진보와 빈곤」을 공부하는 동안 김윤상 교수님은 그 책을 완역했고. 그 무렵 이정우 교수님(경북대 경제통상학부 교수, 전 참여정부 청와대 정책실장)이 합류했어요. 그렇게 진행이 되었어요.


그렇게 헨리 조지의 경제사상에 대해서 공부를 하다가 저는 1997년에 미국 버지니아 텍(Virginia Tech)에 가서 1년 동안 헨리 조지 경제학을 좀 더 깊이 공부했어요. 그 대학에는 니콜라우스 티드먼(Nicholaus Tideman)이라는 미국의 대표적 조지스트(헨리 조지를 따르는 사람) 경제학자가 있습니다. 미국에서 공부하던 중에 성토모 회장을 맡고 계시던 이풍 박사님이 성토모 회장을 맡아주면 좋겠다고 제안을 했어요. 그래서 돌아와서 성토모 회장을 맡았어요. 그게 1998년 초의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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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천덕 신부님은 언제 만나셨나요?


대신부님은 1992년 일본가기 전에 만났어요. 우연한 기회에 예수원을 가게 됐어요. 일본에 가기 전에 기도를 하고 가려고 기도원을 찾다가 우연히 만난 교수님 한 분이 예수원에 가보라고 하셔서 기도원인줄 알고 갔어요. 그때 대신부님이 우리 일행을 만나보고 싶다고 댁으로 초청을 하셨지요. 아마 경제학자들이 예수원에 왔다고 하니까 불렀던 것 같아요. 너무 좋아하시면서 「진보와 빈곤」 원서를 여러 권 들고 와서 한 권씩 나눠주시고, 팜플렛도 잔뜩 주면서 가져가서 공부하라고 하셨지요. 그 때 처음 대신부님을 만났어요.


1990년대는 토지정의운동 초창기라 많이 척박했던 시절이었을 텐데 힘들지 않으셨나요?

 

꼭 그랬던 건 아니에요. 1984년에 대신부님을 존경하는 크리스천들이 모여서 헨리 조지 협회를 만들었다고 해요. 초대 회장은 제가 만난 적이 없고. 2대 회장이 고왕인 박사님, 3대는 한남대학교 총장이셨던 김세열 교수님이 하셨지요. 그 다음이 이풍 박사님이고, 그 다음이 저인데 그때 당시의 활동도 만만찮았어요. 고왕인 박사님 같은 경우는 세계헨리조지협회 회의에 본인이 직접 참가하기도 하고 경실련을 만들 때 상당한 지분을 가지고 들어갔다가 철수하기도 하고 그랬다고 해요. 그때 당시도 영향력이 있었던 셈이죠.


그런데 제가 막상 회장이 되고 보니까 정말 맨땅에 헤딩을 하는 기분이었어요. 여건이 거의 갖춰져 있지 않았어요. 그래도 사람들이 가진 것이 없을 때 갖게 되는 열정이랄까 그런 건 대단했어요. 그런 열정들이 기억이 나지요. 우리가 소수이고 사회적 영향력이 없으니까 우리는 보잘 것 없다, 위축된다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없었어요.


그러다가 참여정부 출범하고 이정우 교수님이 정책실장을 맡으면서 헨리 조지 경제학이 부각이 되면서 2007년까지 사회적인 주목을 많이 받았어요. 하지만 그때보다도 오히려 더 힘이 있고 열정이 있었던 건 그 전이 아닌가 하는 느낌이 있어요.  


그런데 이 사역이 워낙 에너지 소모가 커서 하다 보면 사람이 지칩니다. 제가 2001년쯤에 그런 상태에 빠졌어요. 완전히 탈진해서 대천덕 신부님과 상담을 했어요. 대신부님은 확실히 경험이 많으시니까 얘기를 듣더니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마귀의 침범을 받은 것 같습니다. 성토모는 글을 쓰고 지성적인 활동은 열심히 해왔는데 영적인 활동을 좀 등한히 한 것 같습니다. 중보기도하는 사람들과 연합해서 중보기도를 하시오.”


그래서 2002년부터 성토모 기도회가 만들어졌어요. 그 기도회에서 우리는 정말 뜨겁게 기도했습니다. 기도하면서 문제가 대부분 해결되었습니다. 아마 그 이후에 우리의 역량보다 훨씬 더 큰 영향을 끼칠 수 있었던 것은 기도의 힘이었던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보고 있습니다.


교수님께서 생각하시고 정의하시는 '희년'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처음에 희년이 그저 토지제도를 바꾸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것보다 훨씬 더 큰 개념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희년이 하나님 나라의 질서라고 이해해요. 그러니까 단순히 토지제도 하나를 바꾸는 문제를 넘어서는 것이지요. 이 땅에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보여주고, 전파하고, 세우는 일이 희년사역이라고 봅니다.


희년을 이렇게 정의한 후에는 예전에 하던 고민이 많이 없어졌어요. 복음전파와 사회운동, 이 두 가지를 분리하는 사고가 저에게 굉장히 오랫동안 있었어요. 지금은 그런 분리가 없습니다. 희년을 전파하는 것이 하나님 나라를 보여주는 것이고 그게 바로 복음의 정수라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희년을 보여줄 수 있을까요?

 

희년을 보여주기 위한 다양한 방법이 있겠지요. 교수인 제가 할 수 있는 방법은 글을 쓰고 말을 하면서 보여주는 거죠. ‘이 세상이 이대로 있을 수는 없다. 훨씬 더 좋은 세상이 가능하다. 좋은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하나님이 우리에게 알려주셨다. 그것은 우리가 이 세상에서 실현할 수 있다.’


저와 같은 지식인은 글이나 말을 하면서 그런 내용을 알리는 게 희년을 보여주는 것이겠고, 시민운동을 하는 사람들은 제도개혁 운동을 통해 법과 제도를 바꾸거나 어떤 구체적인 현장을 대상으로 그 현장의 문제를 구체적으로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것이 희년을 보여주는 것이겠지요. 어떤 형태로든 자신이 할 수 있는 역량을 발휘해서 하나님 나라의 질서를 보여주고 또 그것을 이루어 가는 것이 희년을 이 세상에 보여주는 방법이라고 생각합니다.

 

교회나 개인이 희년을 실천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해서 설명 부탁드립니다.

 

우리가 아주 깊이 빠져있는 고정관념 중 하나는, 교회나 개인이 할 수 있는 것은 복음 전파가 가장 중요하고 그 다음 구제 사역 정도이고, 그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다는 생각인 것 같아요. 제도를 바꾸고 정의를 실현하는 것은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고 여기는 경향이 강해요. 정의 실현은 개인이나 개교회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뭔가 ‘토지정의시민연대’같은 시민단체가 할 일이고 우리는 거기에 재정적으로 후원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잖아요.


그런 생각이 제도개혁을 위한 개인과 교회의 실천을 차단한다고 봐요. 그런데 톰 라이트(N. Thomas Wright)라는 신학자는 「마침내 드러난 하나님나라」(IVP 출간)라는 책에서 교회가 이 세상에서 해야 할 일을 세 가지로 꼽습니다. 제일 먼저 말하는 것이 ‘경제정의를 실현하라’, 두 번째로 ‘하나님 나라의 아름다움을 드러내라’, 세 번째로 ‘사람들을 하나님 나라로 초청하라’입니다. 그런데 이 세 가지에 우선순위가 있느냐? 없다는 겁니다. 세 번째가 가장 중요하고 나머지 두 가지는 곁가지냐? 그게 아니라는 겁니다. 경제정의를 실현하는 그 일이 무슨 큰 단체를 통해 해야만 하는 일이 아니고, 바로 개인이나 교회가 해야 할 일이라는 거예요.


저는 돌아가신 김대중 대통령을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었는데, 돌아가시기 전 몇 년 동안의 언행을 보면서 굉장히 좋아하게 됐어요. 그분이 그러셨습니다. “이렇게 민주주의가 말살당할 때는 얘기해야 된다. 얘기를 못하면 벽에다 대고 욕이라도 해야 한다.” 저는 바로 그렇게 하는 것이 개인이 정의를 실천하는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도, 개교회도 제도와 구조에 직접 직면할 수 있습니다. “절대로 잘못된 제도가 도입되도록 투표하지 마시오. 잘못된 정치 지도자가 나와서 잘못된 정치를 펼 때에는 자신이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잘못되었다고 얘기하시오.” 이렇게 가르치고 실천하는 것은 개인이나 개교회가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개인에게 투표독려나 바른 정치지도자들을 뽑는 것들은 필수인 것 같습니다. 또 한 측면으로는 경제정의 실천 단위를 국가뿐만 아니라 조금 더 줄여서 생각하는 것도 의미가 있을 듯합니다.


‘경제정의 실현’을 기독교적인 용어로 바꾸어 표현한다면 ‘공평과 정의가 이루어지는 하나님나라’라는 표현으로 바꿀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우리 사회가 하나님나라까지 도달하기 위해서는 다양한 방법과 역할이 필요할 것 같은데 각 시대마다 교회가 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7-80년대 독재정권시대, 아무도 말할 수 없는 시대에는 교회가 예언자적 결기로 선언하고 사회의 언로를 열어주는 역할이 매우 필요했다고 봅니다. 하지만 모두가 다 문제를 말하고 비판할 수 있는 오늘 이 시대에는 교회가 보다 더 초점을 맞춰야 될 부분이 하나님의 말씀이 실현되는 모델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자본주의 문명의 위기를 말하는 오늘의 시대는 대안이 필요하지만 대안이 잘 보이지 않는 시대라 생각됩니다. 대안을 찾기 위한 실험이 많이 필요해 보이는데 교회가, 그리스도인들이 그 전위적 역할을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요? 대안을 찾는 과정의 처음 시작은 어렵기 때문에 용기가 필요하고 전적인 헌신이 필요할 텐데 교회와 종교공동체가 이 역할을 많이 감당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 그건 좋다고 봅니다. 좋은 세상의 모습을 다양한 형태로 보여주는 것은 중요합니다. 토지정의실현운동과 관련해서도 현장을 찾아가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김동호 목사님과 페이스북에서 토론을 하셨는데 김동호 목사님께서도 본인이 생각하시는 희년을 실천하고 계시고 이런 방식으로 하면 희년을 이룰 수 있다, 희년까지 갈 수 있다는 생각으로 사역을 하고 계시는 듯합니다. 김동호 목사님의 입장에 대해서 교수님께서는 그것만으로는 부족하다는 생각이신데 교수님의 생각에 대해서 좀 더 구체적으로 말씀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분이 하시는 일이 귀하다고 생각해 왔습니다. 그런데 최근에 그분이 올리신 페이스북의 글을 보면서 그분이 구제 사역을 중시하다 못해 정의 실현과 같은 중요한 운동을 폄하하고 있고, 다른 중요한 영역들이 있어야 가능한 일을 본인의 구제 사역으로 다 할 수 있다고 부풀리고 있다고 판단했어요. 구제가 아무리 선한 일이라고 해도 그렇게 말하는 건 잘못이지요. 그래서 논쟁 아닌 논쟁을 하게 되었지만 이런 부분은 갈등이 될 필요가 없는 거라고 봅니다. 이 일도 열심히 하고 저 일도 열심히 해야지요. 성경에서는 자비와 정의가 모순되지 않습니다. 둘 다 중요하지요. 둘 다를 중요하게 여기는 것, 그리고 그 둘을 담당하는 사람들이 서로 격려해주는 것, 저는 그게 정상이라고 봅니다. 

 

교수님의 전공이신 사회과학 분야로 넘어가서 질문들을 몇 가지 드리겠습니다. 먼저 요즘 연구하시는 연구주제들에 대해서 말씀 부탁드립니다.

 

예전에 하던 그대로 시장친화적 토지공개념, 토지보유세 관련해서 계속 연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최근에 「토지의 경제학: 경제학자도 모르는 부동산의 비밀」이라는 책을 하나 썼어요. 3월 말 경에 출판될 예정입니다. 

 

예전에 북유럽의 ‘토지공공임대제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걸로 기억합니다.

 

관심은 계속 있지만 구체적으로 연구는 해보지 않았어요. 연구를 해보고 싶습니다.

 

복지국가 논의에 있어서 북유럽 모델을 많이 언급하고 있지만 진보든 보수든 북유럽의 토지문제에는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지 않는 것 같습니다. 한국사회는 부동산문제가 심각한데 그 해법으로 북유럽의 토지제도에서 어떤 실마리를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 연구가 많이 필요합니다. 저도 그 쪽으로 연구를 좀 해보고 싶어요.

 

2012년 총선과 대선 국면에서 ‘복지국가’가 담론과 이슈에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복지 국가 재원마련 방안에 대해서도 고민을 많이 해야 할 텐데 교수님께서 공부하셨던 토지보유세와 관련해서 재원마련 방안과 연결되는 부분이 있을 것 같습니다.

 

향후 몇 년 동안 ‘복지’가 시대정신이 되는 것은 틀림없을 것 같아요. 사람들의 삶이 그만큼 ‘복지’를 절실히 필요로 하기 때문에 복지가 가장 중요한 이슈가 된 것 같아요. 그런데 무슨 돈으로 복지를 할 것인지가 핵심인데 정치인들은 재원 마련에 대해서 명확하게 말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부분에 대해서 정말 정직하게 접근을 하고 실현가능한 대안을 만드는 것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런데 진보진영에서는 무조건 증세를 하자는 입장입니다. 하지만 그건 정답은 아닌 것 같습니다.


반면 토지정의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패키지형 세제개혁 방식에 너무 익숙해져 있어서 토지보유세를 올리는 대신에 다른 세금을 줄이자는 얘기를 계속하는데, 복지가 대세인 시대에는 그걸 좀 접어야 하지 않을까라는 생각을 합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다른 세금을 감면해준다는 얘기를 하지 않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토지보유세를 강화하고 그와 함께 세수를 더 확보할 수 있는 방안을 모색을 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지만 세수 확보를 무차별적으로 하지 않고 원칙을 가지고 접근을 해야 합니다. 이 문제를 두고 토지정책학회 교수님들이 토론을 한번 했어요. 그 토론의 결론은 첫 번째로 토지보유세를 강화한다. 두 번째로 각종 특권이익에 대해 세금을 부과한다. 세 번째로, 각종 비과세감면제도를 개선해서 세금 탈루를 방지한다. 네 번째는 부가가치세를 올린다. 물론 지출 개선은 당연히 이뤄져야 하고요.


부가가치세를 올린다고 하면 깜짝 놀라겠지만 부가가치세는 다른 나라에 비해서 우리나라가 상당히 낮은 편이고 현실적으로 증세의 사회적 비용이 가장 적은 세목입니다. 조금만 세율을 올려도 세수가 많이 늘어나고요. 그래서 OECD 평균 수준을 기준으로 해서 세율을 지금보다 좀 더 높여도 되지 않을까 하는 결론에 도달했어요.

 

부가가치세는 저소득층에 부담이 더 큰 역진적 세금이라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예. 하지만 역진성을 방지하는 장치를 마련하면 되고, 또 세수 확보라는 측면에서 부가가치세가 갖는 나름의 긍정적인 기능을 감안하면 복지 재원 마련의 대안 중 하나로 고려해 볼만하다고 생각합니다.


가장 큰 문제는 토지보유세를 웬만큼 올려서는 세수 확보가 안 된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참여정부 때 정부 당국의 추산으로는 부동산 보유세의 실효세율을 1%까지 끌어올리면 삼십 몇 조가 나온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되기까지 시간이 많이 걸리고, 1%까지 올리기 전까지는 어떻게 할지 답이 없어요. 그러니까 복지 확대를 전제로 할 경우에는 다른 세금의 인상이 불가피한 것이지요. 결국 소득세, 법인세, 부가가치세 중 어느 것이든 올려야 하는데, 토지보유세 강화, 특권 이익의 환수, 세금 탈루 방지가 확실하게 이뤄진다는 전제 하에서 부가가치세를 올리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 보자는 것입니다.


그 동안 토지정의 운동 측에서 주장해 온 대로 패키지형 방식을 따라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는 대신 다른 세금을 감면해주게 되면 복지는 어려워집니다.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서는 토지보유세를 강화하는 대신 다른 세금을 감면하자는 얘기는 일단 유보해야 할 것 같아요. 저는 그렇게 봅니다.


증세를 선호하는 진보진영과의 연대에 있어서 좋은 방법인 듯합니다.     


세수를 더 확보해야 하는 건 틀림없는데, 중요한 건 우선순위다, 그리고 다른 무엇보다도 토지보유세가 우선이다라는 사실만 진보진영이 인정하게 만들어도 굉장히 큰 성과죠. 얘기를 잘해 보면 진보진영이 그건 받아들일 것 같아요.

 

종합부동산세(이하 종부세)를 부활시키는 것도 중요한 부분인데 진보진영에서 이슈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참여정부 때 보유세 강화하다가 공격을 많이 받았고 정권이 바뀌니까 바로 무력화되어버리면서 일종의 트라우마가 생긴 것 같아요. 항간에는 노무현 대통령이 종부세 때문에 그런 지경에 빠졌다고 보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니까 정치인들이 겁이 나서 손을 대지 못하고 있어요. 참여정부 부동산 정책을 주도했던 김수현 교수님(전 청와대 국민경제비서관) 같은 분들도 실효세율 목표를 0.5%로 잡자고 해요. 보유세 트라우마 때문에 그런 것 아닌가 추측합니다.


부동산 보유세 실효세율 0.5% 목표는 2005년 당시 한나라당이 내건 목표였거든요. 참여정부는 1%를 표방했고요. 참여정부 때 만들었던 법안대로 가면 2017년에 실효세율 0.61%가 되게 되어 있었어요. 그리고 실효세율 1%는 어렵게 사회적 합의에 도달한 목표인데 이게 0.5%로 후퇴한 겁니다. 이게 좀 아쉬워요. 그래서 일단은 실효세율 1% 목표를 복원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판단합니다.


그만큼 실제로 한국의 지주계급 세력이 엄청난 파워를 가지고 있다는 반증이네요.

 

그렇죠. 그 당시 지주계급이 얼마나 센지 사람들이 정말 생생하게 체험을 했습니다. 

 

진보진영 일각에서는 기본소득에 대한 이야기도 하고 있습니다. 김윤상 교수님께서도 모든 사람에게 토지에 대한 권리가 있기 때문에 토지보유세로 기본소득을 마련하는 것은 정당하다고 보시기도 하구요. 이런 부분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시는지 말씀 부탁드립니다.

 

기본소득이라는 것은 조지스트들이 말하는 사회적 배당금 개념과 거의 비슷합니다.  다만 재원을 기본소득에서는 다양하게 마련하는 것이고, 조지스트 쪽에서는 토지세 및 기타 특권이익 과세만으로 하자는 것이지요. 나머지 개념은 동일하다고 봅니다.


헨리 조지 경제사상에는 노력소득에 대한 감세가 포함되어 있어서 양자가 많이 다르게 보일 수도 있는데, 사회적 배당금 개념으로 접근을 한다면 크게 다르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토지보유세로 당장 뭔가 할 수 있는 세수 확보가 어려우니까 기본소득을 주장하는 사람들이 하듯이 다른 재원을 찾아보려고 노력하는 것도 의미가 있다고 판단합니다. 다만 무차별적으로 부자 증세를 하자는 접근 방식은 곤란하고 좋은 세금을 우선으로 가능한 많은 세수를 확보해서 배당, 즉 복지 지출을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봐요.


그런데 기본소득을 진보신당이 강령으로 받아들인 것 같아요. 좌파 중에서도 너무 소수라는 문제가 있는데, 대중에게 좀 더 친근한 이미지로 포장을 할 수 있으면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 비슷한 내용이니까 우리 쪽에서 포장을 잘 해서 내놓을 수도 있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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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보 진영 일각에서는 복지국가에 대한 한계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합니다. 복지재원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경제성장을 전제로 하는데 현재와 같은 천연자원소모적인 경제성장은 지속가능하지 않다고 주장하며 복지국가 시스템의 한계를 지적하기도 합니다. 또 복지국가 시스템은 ‘배제의 논리’에 기반한다는 부분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이주민 노동자들이 계속 유입되면 과도한 복지비용으로 인해 복지국가 시스템이 붕괴될 가능성이 있으므로 외국인에 대한 배척을 기반으로 한다는 논리도 있습니다. 실제 복지국가 시스템이 잘 정착되어 곳에는 외국인 배척과 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도 하구요.

 


우리가 지향하는 하나님나라는 모두를 포용해야 하는데 복지국가 시스템 자체가 국가 시스템이기 때문에 이러한 문제를 풀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런 문제제기들을 들으면서 희년에 기반한 제도라는 말은 추상적인 진리나 하나의 은유로는 의미가 있을 수 있겠지만  구체적인 적용으로 들어갈 때에는 의견이 분분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우리의 일상 가운데 이상적인 질서를 그대로 구현해내는 것은 영원히 불가능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상적인 질서는 하나의 궁극적인 목표로서 중요한 의미가 있지요. 그래서 목표 방향은 거기로 잡고 방향이 거기로 잡혀 있는 한은 조금이라도 개선되면 가야 한다. 그게 제 입장입니다. 그런 점에서 보면 저는 현실주의자입니다.


왜 제가 참여정부를 그렇게 옹호하느냐 하면 그 사람들은 제가 옳다고 믿는 방향에서 봤을 때 그쪽으로 역대 어느 정부보다도 한걸음 더 나아간 정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가 옹호하는 겁니다. 부족한 점이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어떤 정책이나 정치세력을 판단할 때 저는 그렇게 판단합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이상적인 기준에 정확하게 맞느냐 맞지 않느냐는 사실 크게 중요하지 않습니다. 그건 하나의 목표이고 그 목표와 방향에 비추어 볼 때 어떤 정치세력과 정책 수단이 우리 사회로 하여금 그쪽 방향으로 조금이라도 나아가도록 도움을 준다면, 지금 이상적인 기준에 미달하더라도 지지한다는 겁니다.

 

희년함께에 해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우선, 희년함께가 추구하는 장기적 목적과 단기적 목표, 이를 이루기 위한 전략, 전술 등의 기획이 있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전쟁을 수행하는 군대와 비교해보시기 바랍니다. 전략과 전술을 수립하기 위한 치열한 집단적 노력이 엿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아쉬운 점입니다. 전략과 전술 없이 움직이는 단체는 군대가 아니고 동아리이지요. 현재 희년함께는 동아리로서의 성격이 강합니다. 군대라고 보기는 어려울 것 같고요. 물론 동아리로서의 기능도 중요하기는 합니다만, 그것만 가지고는 부족합니다.


정확한 전략과 전술이 없으면, 어떤 문제나 이슈에 개입할 때 어떻게 해야 하는지 잘 알 수가 없어요. 정말 중요한 문제는 해결이 날 때까지 붙들어야 합니다. 속 된 말로 끝장을 봐야 하는 것이지요. 이런 집요함은 오랜 고민과 치열한 토론 끝에 나오는 정확한 전략과 전술의 수립이 없이는 나오기 어렵지요.


희년의 가치를 우리 사회와 제도 가운데 실현하기 위해서는, 있는 힘을 다해서 의견을 모아야 합니다. 고민하고 기획하고 사람들의 집단지성을 모아서 정리하고, 정리된 상태에서 일을 추진해가는 그런 노력을 해야 될 것 같아요. 보다 역량 있는 운동을 하기 위해서는 이러한 일들이 필수적이라고 봐요. 아무리 바람직한 일이라도 자기가 참여하지 않은 일에는 책임감을 느끼지 않는 것이 사람이지요. 멤버들의 자발적인 참여를 위해서도 집단지성을 모으는 일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 하나 말씀을 드리자면, 희년함께 사람들이 자존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요. 사회적으로 저명한 인사나 단체에서 보유세 강화를 주장한다고 크게 감격할 필요가 없다는 것이지요. 토지보유세 강화를 지지하는 것은 정의를 중시하고 상식을 가진 사람이라면 당연한 태도 아닌가요? 토지정의 운동, 희년운동은, 부족하지만 진리를 추구하는 운동이고 벌써 꽤 오래 되었으니까 자존심을 가지고 당당하게 운동하라고 이야기하고 싶어요.


장기적인 목적, 단기적인 목표, 그에 따른 전략과 전술 등을 잘 준비해야 할 것 같습니다. 전반적인 청사진 속에서 장기적 목적과 단기적이고 구체적인 계획이나 실천방안들을 잘 만들어가야겠습니다.

 

그게 분명해진다면 기도는 결사적으로 됩니다. 예전에 염리동 성토모 사무실에서 기도할 때는 자기가 기도회에 안가면 큰일이 나는 것처럼 다들 사명감을 가지고 기도회에 참석했어요. ‘우리가 기도회를 쉬면 하늘에 구멍이 난다’는 농담이 있었을 정도지요. 그런 긴장감과 사명감이 중요하다고 봐요. 지금은 그때보다 재정은 풍부해졌지만 그런 긴장감과 열정이 약해진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가 있습니다.


또 하나 권면을 해주고 싶은 부분은 시간이 지나가면 사람들이 망각을 한다고 그러잖아요. 그래서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내가 어떻게 너희를 구원했는지 알리기 위해서 무엇을 자꾸 만들라고 하세요. 돌을 세우고 문설주와 대문에 쓰고 자녀들에게 가르쳐라. 전 그 말이 무슨 뜻인지 잘 몰랐어요. 그런데 요즘 가만히 보니까 왜 그랬는지 알겠어요. 사람들은 본래 그 운동이 출발했을 때 지향하던 것을 잘 잊어버립니다. 외형상으로는 잘 되어 가는 것 같은데 그 운동이 시작됐던 당시의 정신은 희미해지는 것이지요.


저는 기회가 주어지면 대천덕 신부님의 평전을 쓰고 싶다는 생각이 있어요. 대천덕 신부님을 너무 추앙해도 안 된다고 봅니다만, 그 분이 가지고 있었던 분명한 생각은 우리가 잘 이어가야 합니다. 그 중에 정말 중요한 것은 ‘성령을 따라서 행하라’는 겁니다. 저는 그것이 굉장히 중요하다고 봐요. 희년함께는 원래 정신으로 따지면 성령과 공의가 같이 가는 겁니다. 그런데 지금은 성령에 대한 관심이 많이 약해진 게 아닌가 하는 염려가 있습니다.


그 점에서 원래의 정신이 많이 희석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시간이 지나가면서 어느 조직이든 변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입니다만, 중요한 정신이 희석되어서는 안 되지요. 그래서 성경에는 자꾸 기억하라는 말씀이 나오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성령을 따라 행하면 지금 노력하는 것을 가지고 엄청난 폭발력을 낼 수 있을지 모릅니다. 아니 지금보다 덜 노력하고도 훨씬 더 많은 성과를 낳을 수 있을지 몰라요. 전 그 부분이 관건이라고 봅니다. 거기서 방향을 잃으면 아무리 많은 일을 해도... 글쎄요. 그래서 좀 무식해 보이더라도 진짜 성령의 은사를 사모하고 그 은사와 능력이 없이는 내가 이 싸움을 해낼 수 없다는 생각을 분명히 하고 성령의 능력을 간구하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한 가지 격려를 해주고 싶은 것은 청년들이 찾아온다는 게 저는 신기해요. 요즘 그런 곳이 많지 않잖아요. 지금 희년함께 청년들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이나 열정을 보면 희망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 점에서 굉장히 기대가 됩니다. 이 청년세대가 성장해서 다음에 이 운동을 맡아갈 때는 지금보다 훨씬 더 크고 선한 영향력을 발휘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지요.


한국교회에 하시고픈 말씀 부탁드립니다.

 

이번에 김동호 목사님과 페이스북에서 논쟁을 하면서 깜짝 놀랐어요. 교회 안에 정의를 희구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는 것 때문에요. 지금까지 저는 그런 사람들을 희년운동, 토지정의운동 안에서만 봤어요. 우리는 숫자도 적고 얘기해봐야 다른 사람들이 잘 듣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는데, 이번 일을 통해 희년운동 밖에도 정의를 갈구하는 사람들이 굉장히 많이 있다는 걸 발견했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희망이 있다고 봅니다.


반면에 교회의 부패 정도는 갈 때까지 간 것 같습니다. 옛날에는 이상한 짓을 하면 부끄러움을 느끼기라도 했는데, 요즘은 부끄러움도 모르는 것 같아요. 돌아가신 대신부님은 생전에 역사상 교회가 병들지 않은 때가 없었다고 하시면서 병든 교회를 위해 기도하라는 가르침을 주셨지만, 이제는 교회라는 이름이 붙어 있다고 해서 다 한국교회의 범주 안에 넣어서 이런 상황을 안타까워하고 책임을 지려고 할 필요가 있을까란 생각이 들 정도예요. 그래도 김동호 목사님 같은 분은 개방적이고 들을 귀가 있기 때문에 제가 비판한 건데, 지금의 부패한 목회자들과 교회들은 비판할 가치도 없다고 생각해요.


교회가 이렇게까지 부패한 데는 일차적으로 목회자의 잘못이 크지만, 신자들의 잘못도 크다고 봅니다.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 작은 잘못이나 불의를 교인들이 용납하면 안 되는데, 작은 것들을 용납하다가 결국 이 지경이 된 것이 아닙니까?


하지만 이런 문제는 대형교회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니고 어디에서든지 일어납니다. 희년함께에서도 이런 문제가 생길 수 있습니다. 만약 어디서 돈이 엄청나게 들어오거나 사회적으로 인정받으면서 출세를 하거나 하면 비슷하게 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그건 어디서든 일어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그래서 그 사람들과 우리가 본질적으로 다른 존재라고 하는 식의 자기 의에 빠져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만, 그렇다고 해서 오늘날 교회와 목회자의 부패를 그냥 덮어줘서는 안됩니다. 지금 한국 주류교회의 모습은 이미 교회의 모습을 상실했다고 봅니다.


오늘 한국 사회 속에서 청년들이 많이 위축되어 있습니다. 청년들에게 해 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청년들이 너무 안쓰러워요. 저희가 청년이었던 때와는 너무 달라서 기회가 너무 없어요. 기회가 없는 상황에서 살아가야 하니까 수많은 사람들이 열패자로 살 수 밖에 없는 구조인데 그런 열패자의 상태에 떨어지면 자기가 뭔가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점에서 많이 안쓰러워요.


저는 청년들이 꼭 한국에 살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어요. 기회가 있는 땅으로 가면 어떨까요? 그게 한국일수도 있고 다른 나라일 수도 있지요. 새로운 길을 국내에서만 찾으려고 하지 않아도 좋을 것 같아요. 선교에 헌신하라는 이야기가 아니고요.


저는 청년들이 자기 개인의 존재를 충분히 실현하고 자유로운 존재로 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아가는 꿈을 꾸는 게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누가 부여했는지도 모르는 높은 가치에 눌려서 남들 다 가니까 나도 헌신하겠다는 자세는 곤란하다고 봐요. 제일 우선되어야 할 것은 개인의 자유와 존엄성이고 그런 것을 실현할 수 있는 쪽으로 가야 된다고 생각해요.


하나님 앞에서 자유를 구가하는 존재, 그게 결국은 희년이 실현된 것이 아닐까요? 자기 삶에서는 희년이 실현되지 않았는데 세상에서 희년을 실현할 수 있나요? 희년이 뭔지도 모르는데? 그러니까 자신의 삶에 희년이 먼저 실현되고, 나의 자유와 해방이 너무 좋아서 다른 사람들도 초청해야지요. 그럴 때 그 사람이 초청에 응하지, 자기 자신은 온갖 문제에 찌들려 지내면서 희년을 말하면 듣겠어요?


그런 삶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기도하면서 열리는 길을 따라 가다보면 국내가 될지, 국외가 될지, 선교사가 될지, 회사원이 될지, 교수가 될지, 시민운동가가 될지, 농부가 될지 모르지만 그렇게 가는 거지요. 어렵지만 그렇게 목표를 세우고, 잘 되지 않아도 너무 낙심하지 말고요. 한국에서는 사실 자신의 잘못은 그렇게 크지 않다고 봐요. 다른 시대보다 더 참아야 되는 것이 많으니까 잘 참고 기도하면서 가다 보면 어려움 속에서도 하나님이 도와주신다고 생각해요. 그 과정에서 의미 있고 자유롭고 행복한 인생이 각자의 삶에서 실현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한국사회가 건강하게 성장하고 하나님나라의 근사치로 가기 위해서 한국사회가 고민해야 할 것이 있다면 말씀 부탁드립니다.

 

사회적 책임이라고도 하고 공적 책임이라고도 할 수 있겠는데, 전체 국민들이 그 부분이 너무 약해진 것 같아요. 예를 들면 우리가 대학에 다닐 때는 대학생들이 한결같이 뭘 고민했냐면 이 사회를 위해서 내가 뭘 희생할까 하는 것이었어요. 그래서 지금 생각하면 참 엉터리 같은 생각이지만, ‘내가 온전하게 졸업하면 안 된다, 내가 법대를 가면 그건 수치스러운 일이다’ 하는 고민을 했었고. 실제로 희생을 안했다 하더라도 민족과 국가를 위해서 희생이 필요하다는 의식을 대개 갖고 있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자기 자신의 이해관계가 너무 강하게 부각이 되고 그걸 제어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도 너무 약해져 있습니다. 그래서 건강한 사회적 책임의식, 건강한 공적 윤리랄까 이런 것들을 회복하는 것이 우리나라 국민들로서는 굉장히 중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교회가 그런 의식들을 함양시키는 곳이 되면 좋겠습니다. 개인적인 기도제목이 있다면 나눠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저는 오십대가 되니까 큰 구상을 하고 꿈을 꾸고 하는 것보다 제 인생을 낭비하지 않고 제가 가지고 있는 역량으로 희년의 복음을 잘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소원이 있지요. 제가 하는 일들이 그런 일들에 도움이 되면 좋겠고요. 그렇게 할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시면 고맙지요.  

 

[2012.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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