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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년이란 무엇인가6] 교회사 속의 희년을 조명하다! - 연세 학원선교연구소 김유준 교수

작성자 : 관리자 (175.211.189.***)

조회 : 1,967 / 등록일 : 19-03-01 16:36

[희년이란 무엇인가? - 희년함께 연재 기획 인터뷰6]

 

 

 

교회사 속의 희년을 조명하다!

연세 학원선교연구소 김유준 교수

 

 

 

김유준 / 희년함께 자문위원

 
희년이란 무엇인가 여섯번째 인터뷰는 연세대 교목실에서 학원선교 사역을 감당하고 계시는 김유준 교수님입니다. 급변하는 캠퍼스의 상황에 맞는 캠퍼스 선교전략과 교회사 속에 숨겨져 있던 희년사상에 대한 통찰 등을 나누어 주셨습니다. 초대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의 희년사상을 통해 한국교회 갱신의 실마리를 찾아봅니다.

 
자기 소개 및 하시고 계신 사역 소개 부탁드립니다.

 

저는 현재 연세대학교 교목실에서 학생선교사역자로 섬기고 있습니다. 올해부터 연세학원선교연구소가 새로 시작되었는데 연구소 전임연구원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연세대 학부생들에게 기독교 이해 과목을 강의하고 있구요. 작년 2월부터 연세대 북문 쪽에 있는 은진교회에서 담임교역자로 목회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캠퍼스사역에 참여하게 되셨나요?

 

원래 저는 군대에서 북한에 대한 기도를 많이 하면서 북한선교에 대한 마음을 품게 되었습니다. 한때는 어떻게 하면 북한에 가서 선교할 수 있을지 고민하면서 월북하는 방법도 생각했구요(웃음).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돕는 처소사역으로 가려고 생각도 했었습니다.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가운데 미국이나 캐나다에서 북한사역하시는 분들이 많이 계심을 알게 되어서 그곳에서 목사 안수를 받고 북한으로 들어가려고 신학대학원 진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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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1996년 연세대 한총련 사태를 눈앞에서 경험하면서 크리스천이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인가라는 고민 속에서 1997년에 연세대 기독총학생회에서 사역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해 총학을 통해 새벽이슬 선교단체를 세우기도 했습니다. 저는 빨리 북한에 가서 복음을 전하고 싶었지만 계속 캠퍼스에 남아있게 되었습니다. 캠퍼스의 필요를 보고 섬기다 보니까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신 마음은 제가 단순히 북한에 가는 것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곳에 가서 무엇을 할 것인지 제가 준비하고 훈련받아야 함을 깨달았어요.

 

1997년 연세대 총학생회를 섬기면서 사회공의나 세상을 변혁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법이 없을까 고민하던 중 성토모(현, 희년함께)를 만나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후로 희년법을 알아가면서 하나님의 공의에 대한 사상이야말로 남과 북의 통일에 정말 중요한 경제원리임을 깨달았습니다. 이제는 하나님께서 기회를 주셔서 북한에 보내주셔도 무엇을 할지 충분히 알려주시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어쨌든 하나님 앞에서의 개인적 결단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시대적인 필요들로 인해 계속 캠퍼스에 남아서 학생들을 도전하게 되었습니다. 기회가 되는대로 전도하고 양육하면서 하나님의 공의를 가르치며 균형 있는 일꾼들을 세우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캠퍼스 선교단체에 속해서 사역을 하셨나요?

 

메이저 선교단체에 속했던 건 아니구요. 연세대에서 기독학생들을 사랑으로 지도해주신 김정주 교수님을 만났는데, 그분은 수업에서 만난 학생들을 전도하고 양육하시더라구요. 1995년부터 그 일을 제가 같이 도우면서 2003년까지 책임을 맡아 학생들을 지도했었습니다. 제자훈련모임(DTP)인데 수업을 통한 전도와 양육과 함께 연세대학교기독학생연합회에 헌신된 학생들을 계속 보내고 섬겼기에 학내 기독학생들의 연합활동에 있어서 중심 역할을 감당했습니다.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을 만나면 전도와 양육으로 선교단체나 교회로 보내는 역할을 했었습니다.

 

그러다가 2008년 박사학위를 받고 나서는 저도 이러한 방법으로 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요즘도 매주 수요일 오후 6시 은진교회에서 수업의 조장들을 모아 2-30명 정도의 학생들을 제자훈련하고 있습니다.

 

제자훈련, 담임목회, 강의까지 하시려면 많이 바쁘실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많은 학생들을 만날 수 있는 자리에 있게 해주셔서 오히려 감사합니다. 요즘 기독교 청년 비율이 굉장히 낮고 청년들의 반기독교 정서가 강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저는 오히려 그런 믿지 않는 학생들을 계속 만날 수 있어서 감사합니다. 100명 정도의 학생들이 수강하는 수업에 들어가면 적어도 7-80명은 비기독교인인데 한 학기가 끝날 때쯤 되면 3-40명 이상이 새롭게 예수님을 영접하고 만나게 됩니다. 차츰 이들이 교회로 연결되고 삶의 중요한 변화들로 간증하는 학생들을 보면서 젊은이들이 주님께 돌아올 수 있는 영적 황금어장에 서있다는 자체가 굉장히 보람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현재 감당하고 있는 이러한 사역들이 하나님께서 저에게 주신 중요한 사명임을 믿고 기쁘게 감당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선교단체들이 고민하는 부분이 학생들이 취업준비, 스펙 쌓기 등에 과도하게 압박을 받아서 선교단체 활동에 많이 참석하지 못하는 것인데 캠퍼스 사역하시면서 이런 부분도 많이 고민하셨을 것 같습니다.

 

캠퍼스 사역에 있어 이제는 새로운 변화의 때가 되었다고 봅니다. 그동안 캠퍼스의 흐름을 잠깐 돌아보면, 1996년 한총련 사건이 일어난 이후로 그 당시 김영삼 정권에서 학생운동, 소위 운동권 학생들을 와해시키기 위한 많은 전략들을 썼습니다. 그래서 그 당시 운동권 학생들을 와해시키기 위한 핵심적인 전략 중의 하나가 바로 학부제와 계열화로의 전환이었습니다. 기존의 학과 체제로 학생들을 뽑다보니까 선후배들이 결집해서 교육하고 운동하고 하니까 그걸 와해시키기 위해 1990년대 후반에 학부제가 시작되었습니다.

 

학부제나 계열화로 바뀌기 이전에는 고3때까지는 열심히 공부하고 대학교 1학년 들어오면 그야말로 대학에서의 자유와 낭만을 만끽하는 분위기였어요. 제가 학부 때만 해도 도서관에 들어가면 무슨 1학년이 도서관에 들어오느냐며 선배들이 기특해 하는 분위기였습니다. 학과공부 보다는 인생과 사회, 역사의 현실을 놓고 고민했으며, 다양한 책을 읽고 토론하면서 동아리활동을 했습니다. 최소한 1년 동안은 마음 편하게 캠퍼스 생활을 만끽할 수 있는 시간이었어요.

 

그런데 학부제로 바뀐 다음부터는 전공 선택을 2학년이나 3학년에 해야 하는데, 전공을 선택하는 기준이 1, 2학년 성적을 가지고 하기 때문에 대학교 1, 2학년 생활이 예전 고3 수험생 생활의 연장이 되어버렸습니다.

 

예전에는 1,2학년들이 학점을 낮은 점수로 깔아주고 4학년들이 취업을 위해서 재수강을 하면서 좋은 성적을 받았는데 요즘은 바뀌었습니다. 오히려 1, 2학년들이 와서 “저 무슨 전공 받아야 되는데 학점 때문에 안 돼요 학점을 제발 올려주세요” 합니다. 오히려 1, 2학년들이 훨씬 더 학점에 목을 매고 반대로 3,4학년들이 양보하는 실정입니다(웃음).

 

그러다보니까 현상적으로는 영어시험 준비, 학점관리 등 소위 말하는 스펙 쌓기에 1학년 때부터 집중해서 전체 대학분위기가 동아리활동이나 선교단체의 신앙 활동은 사치스러울 정도로 시간조차 내지 못하는 상황이 된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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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최근에는 대학들이 좋은 학생들을 경쟁적으로 유치하려고 수시합격생들의 정원을 점차 늘리기 시작했습니다. 불과 몇 년 전만해도 연세대학교에서 수시합격생을 300명 정도 뽑았는데, 점차 수시합격생의 정원이 2000명으로 지난해는 약 3000명 이상으로 늘었습니다. 전체 정원에서 정시합격생의 비율이 거의 사라지고 대부분 수시합격으로 신입생을 모집하고 있습니다.

 

수시합격생은 처음부터 학과가 결정되어 입학하게 됩니다. 수시학생들이 입학하면서부터 자신의 전공을 배정받고 들어오기 때문에 최근에는 다시 학과제로 복귀되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지난 10여 년간 학부제, 계열화는 인문학을 비롯한 일부 학과들을 굉장히 소외시키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전공공부에 있어서도 전공 결정이 늦어져 심도 깊은 전공 공부도 어려웠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을 신앙적 차원에서 본다면 학생들이 이제 다시 예전처럼 여유가 생기기 때문에 이 시점에 신앙적 활동을 강조할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었다고 봅니다. 여기서 좀 더 전략적으로 접근해 보면 기존의 선교단체나 교회들이 너무 예전 패턴에 묶여 있는 것이 문제입니다. 예전에는 1월말, 2월초에 신입생 합격자 발표가 나와서 2월에 신입생 오리엔테이션을 하면서 선교단체나 교회들이 2, 3월에 신입생 사역을 해왔는데요. 요즘은 수시합격 발표가 12월 중순에 나옵니다. 12월에 중순이 되면 수시생들의 합격발표가 대부분 끝나기 때문에 신입생들은 12월말부터 2월초까지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선교단체나 교회는 오히려 그 시점에 성탄절 행사와 송구영신예배 등 연말연시 교회스케줄에 바빠서 신입생들에게 신경을 쓰지 않거든요.

 

신입생 사역은 초기에 접촉하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교회나 선교단체의 사역 패러다임을 근본적으로 바꿔야 합니다. 대학 캠퍼스는 긴박하게 바뀌는데 선교단체들은 예전 패턴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습니다. 이런 부분에 있어서 교회나 선교단체가 민감하고 발 빠르게 전환한다면 그동안에 많이 감소하고 약화되었던 학생신앙운동들도 다시 회복할 수 있지 않을까 그런 기대를 하고 있습니다.

 

선교단체 캠퍼스 사역자들은 변화하는 학교의 흐름을 인식하고 있을 것 같은데요.

 

캠퍼스 사역자들은 인식을 한다고 하더라도 메이저 선교단체들은 4-50년간 캠퍼스 사역을 해오다 보니까 중앙의 리더십들이 예전 패턴들을 그대로 고수하고 계십니다. 아무리 각 대학의 현장에서 뭔가 얘기를 해도 본부에서는 거의 반영이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제가 볼 때는 각 대학 현장 중심의 사역으로 근본적으로 사역의 패턴이 전환되지 않는 한 어렵다고 봅니다. 각 캠퍼스 별로, 사안 별로 사역의 패러다임이 바뀌어야 된다고 봅니다.

 

각 학교의 일정에 최대한 맞추어서 유연성 있게 사역을 해야 할 필요성에 대해 선교단체 간사님들이나 사역자들이 인식을 하고 있어도 본부가 여기에 민감하게 반응을 못해주다 보니까 항상 갈등과 괴리를 느낍니다. 더군다나 좋은 사역자들이 사역을 잘하시다가도 2-3년 후 다른 사역지로 옮겨가는 시스템 역시 근본적 한계를 드러냅니다. 신촌지역에도 2-300개의 교회가 있는데 청년 사역을 잘하시는 분들이 이제 할 만하다 싶을 때 다른 교회 목회지로 옮겨 가고, 다른 부서로 옮겨 갑니다. 이제 한국교회의 수준이라면 어린이사역, 청소년사역, 그리고 청년사역에 있어서 전문사역자들이 나와야 하는 시점이 아닌가 생각을 해보게 됩니다.

 

선교단체들이 변화하는 흐름을 잘 인식하면 좋겠습니다. 북한선교에 대해서도 여전히 마음을 가지고 있으신가요?

 

북한선교는 제 마음 한 켠에 늘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언제, 어떻게 인도하실지 기대하는 마음으로 기다리고 있습니다. 현재는 연세대 내에 있는 탈북 새터민 학생들이 50여명 정도 있는데 그 학생들을 여러 가지 측면으로 돕고자 노력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있는 사람들이 통일의 중요한 씨앗들이고 이들을 잘 돕고 섬기는 것이 통일의 중요한 초석이 됨을 믿기에 새터민들을 여러 측면에서 돕고 있습니다.

 

전공이 교회사이신데 어떻게 교회사에 관심을 가지게 되셨나요?

 

사실은 굉장히 단순한 동기로 시작했습니다. 이미 말씀드린대로 원래 저는 북한선교를 준비하던 중 1996년 연세대 한총련 사건이 터지면서 학교에 계속 남아 있게 되었습니다. 섬기고 있던 제자훈련모임 인도과 함께 기독총학 운동인 새벽이슬의 리더십으로 섬기면서 연세대 캠퍼스를 떠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이왕 캠퍼스 사역을 하는 동안 연세대에서 석사학위과정을 같이 병행하면 좋겠다싶어 대학원에 지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사실 저는 연세대에서 신학석사를 할 생각이 전혀 없었습니다. 원서 접수 마감 몇일 전에 무슨 전공을 선택해야 하나 생각하다가 단순히 북한선교를 떠올리면서 북한과 관련이 있는 한국교회사를 지원하게 되면서 교회사 전공을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제가 입학하고 나서 한 학기 만에 한국교회사의 민경배 교수님이 정년은퇴를 하셨는데, 그것도 모르고 지원을 했던 것입니다. 결국 서양교회사로 전공을 바꾸어 교회사로 석사와 박사학위를 받게 되었습니다. 지금 돌아보면 하나님께서 정말로 제게 필요한 부분을 공부하게 하시지 않았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 참 감사합니다.

 

서양교회사 이양호 교수님께서 칼빈을 전공하신 분이셔서 그분 밑에서 칼빈의 신학을 하면서 제가 나중에 석사논문을 칼빈의 경제사상과 구약의 희년사상을 연결해서 논문을 쓰게 되었던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교수님의 역서 <소유권>이나 <희년, 한국사회, 하나님나라> 등을 보면 초대교회 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의 말과 글 속에서 희년사상을 포착해 내셨는데 교회사 속의 희년사상에 관심을 가지시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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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1997년 연세대 희년학교에서 이풍 선교사님을 통해서 희년사상을 처음 접했습니다. 그때 저에게 희년사상은 굉장히 큰 충격이었고 성서가 이 세상에 대한 구체적인 대안을 가지고 있음에 큰 도전이 되엇습니다. 희년사상을 구체적으로 알아보기 위해 박창수 형제와 함께 새벽이슬 모임을 하면서 관련 자료들을 읽고 공부하게 되었습니다. 전강수 교수님을 비롯한 여러 경제학자들의 글도 함께 보았는데 경제학적으로는 깊이 있는 연구나 논문들이 참 많이 나와 있었습니다.

 

그런데 희년에 관한 신학적인 배경은 없는지 찾아봤을 때 특히 제가 교회사 전공이다 보니까 교회사 논문에서는 희년사상을 찾아보기가 힘들었습니다. 물론 대천덕 신부님의 저서를 통해 큰 맥을 잡기는 했지만, 희년사상과 관련된 신학자나 신학서적이 거의 없었습니다. 주로 신학적으로 얘기하시는 분들은 레위기에 희년법이 나온다고 얘기하시는데 그때만 해도 구약학자들 중에 이런 내용들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분도 없었던 것 같습니다.

 

제게 있어서 구약과 현대의 시간적 간극이 굉장히 컸습니다. ‘구약 레위기에 나오는 희년법과 헨리 조지 등 20세기 경제학자들 사이에 희년에 관한 이야기가 아무 것도 없었단 말인가? 기본적으로 진리라고 한다면 연속성이 전제되어야 하는데 교회 역사에서 희년에 대한 아무런 가르침이 없었단 말인가? 교회가 무관심했던 부분인가 아니면 이 부분이 있어왔는데 교회가 숨겨왔던 것인가?’ 하는 궁금증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사회가 자본주의 속에 있다 보니 기독교는 마치 자본주의와 동일한 것으로 생각을 하고 있고 자본주의가 아닌 다른 경제체제는 다 잘못된 사상인 것처럼 여기는 것을 보면서, 과연 기독교가 자본주의와 동일한 것인가라는 고민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면서 루터와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의 경제사상에 대한 의문을 갖게 되었습니다. 한국개신교의 경우 7-80%가 장로교인데 장로교의 신학적 뿌리가 존 칼빈이기에 과연 칼빈이 자본주의를 전적으로 지지했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그런 흐름들을 연구하다 보니까 막스 베버가 쓴 <프로테스탄트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이라는 책에서 청교도 정신이라고 할 수 있는 금욕정신에 기반한 근검, 절약이 자본주의의 중요한 토대인 자본축적의 기반이 되었다는 것이 결국 기독교와 자본주의를 밀착시키게 된 중요한 논거가 되었음을 알게 되었어요. 그런데 저는 그 논거 속에서 오히려 칼빈의 사상과 자본주의가 동일하지만은 않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칼빈주의와 청교도정신이 자본주의에 기여한 바가 분명히 있지만 그렇다고 칼빈의 사상이 자본주의만을 얘기하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여러 정황을 통해 확인했습니다. 시대적으로는 자본주의와 사회주의가 나오기 이전이기 때문에 자본주의적인 요소나 사회주의적인 요소가 존재하지만 실제 칼빈의 사상은 이것들과는 또 다른 제3의 성경적 경제원리가 있음을 확인했고 제가 연구해본 결과 지공주의와 너무나 밀접한 사상임을 발견했어요.

 

희년의 사상이 성경에 있으니까 따라야 한다는 것보다는 개신교인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루터나 칼빈과 같은 종교개혁자들이 그런 얘기를 했는지, 교회사 속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던 초대교부들도 그런 얘기를 했는지 확인해봐야 하지 않겠느냐는 열망 속에서 칼빈, 루터, 초대교부들까지 연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연구해보니까 초대교부들과 종교개혁자들은 희년의 가르침이라든지, 우리가 표현하는 지공주의와 같이 하나님께서 주신 천연자원들과 불로소득을 공유해야 할 것들을 강력하게 외쳤는데도 교회가 오히려 숨겨오지 않았는가 싶을 만큼 교회 역사에서는 철저히 드러나지 않은 문제점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MB정부는 기독교정부라고 할 수 있을 만큼 크리스천의 수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경제적 원리에 있어서는 성경과 반하는 정책을 펼칠 수밖에 없는 이유는 그분들을 신앙적으로 가르치고 지도한 목회자들이 희년에 관한 신학적 가르침을 신학교에서 배운 적이 없기 때문입니다. 신학교에서도 역시 희년을 가르칠 수 있는 교재라든가 전문신학자들을 거의 찾아볼 수 없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 자본주의적 가치체제에 익숙한 분들이 대부분 신학을 하다보니까 이런 부분이 그동안 제대로 밝혀지지 않은 것도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교회사적 연원을 살펴보면 그 뿌리는 결국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한 이후에 기독교가 로마제국의 권력과 함께 맞물려 가면서 기득권을 누리다 보니까 교부들이 가르친 희년사상들이 더 파묻히게 된 것입니다. <소유권> 책에서 밝힌 것처럼 오히려 로마법 속에 있는 절대적이고 배타적인 소유권의 원리들이 교회 내에 침투해 들어오면서 결국은 희년의 가르침들이 교회 역사 속에서 많이 희미해졌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다시 연구하면 할수록 교부들이나 종교개혁자들이 희년의 가르침을 강하게 얘기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교수님께서 정의하시는 희년이란 무엇인가요?

 

희년이 그동안에는 일반적으로 구약의 레위기 25장에 나오는 많은 율법 조항의 하나 정도로 치부했지만 희년을 알면 알수록 희년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중요한 하나님 나라의 핵심적인 가르침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께서도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전하신 첫 번째 설교가 바로 희년 설교였습니다. “주의 은혜의 해를 전파하려 함”이라는 주님의 사명선언문을 볼 때 희년은 성경 전체의 중요한 중심 주제임을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증거하셨고, 공평과 정의에 기초한 하나님 나라의 통치원리의 근간이 바로 희년에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볼 때 저는 희년을 오늘날 우리 시대가 밝히 드러내야 할 복음의 본질로 이해합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나 역사 속에서 희년의 가르침이 축소되고 외면되었던 것들을 우리가 회개하면서 희년은 다시 회복해야 될 복음의 중요한 본질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희년은 가난한 사람들과 고통받는 사람들에게는 자유와 해방의 소식이지만 현재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무척 부담스러운 것일 수 있는데 교회 내에 많은 것을 소유하고 있는 분들을 어떻게 설득할 수 있을까요?

 

저는 가장 중요한 방법이 점진적인 것이라고 봅니다. 개선도, 혁명도 아닌 점진적인 개혁이 되어야 합니다. 교회사를 보면 급진적(radical) 종교개혁자였던 토마스 뮌처라든가 재세례파는 주요 종교개혁자들보다 훨씬 더 철저하게 성서의 원리대로 살아가며 거룩한 삶을 살려고 노력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시대에 그들의 시도가 실패했던 이유가 바로 너무 급진적이고 혁명적이었다는 점입니다.

 

자기 인생의 지경과 한계를 안다면 그 시대에 자신에게 맡겨진 부분까지만 하면 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기 때에 간절히 원하는 것의 최종 결론까지 다 보려고 하니까 조급하고 급진적이고 혁명적으로 가게 됩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이 일을 기뻐하시고 하나님께서 이루신다는 믿음이 있다면 자신의 때에는 그냥 썩어져서 한 알의 밀알이 될 수도 있어야 합니다. 마치 모세가 가나안 땅을 그토록 가고 싶어 했지만 여호수아에게 모든 것을 위임하고 내려놓았던 것처럼, 다윗이 그토록 원했던 성전건축을 솔로몬에게 위임한 것처럼, 우리 인생에서 하나님께서 각자에게 주신 사명과 한계가 어디까지인지를 깨닫고 근본적으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그 일을 이루신다는 믿음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영국의 정치가 윌리엄 윌버포스는 46년 동안 노예제도 폐지를 위해 투쟁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46년이라는 세월은 그 당시의 기득권층 어르신들은 다 돌아가신 세월입니다. 46년이라는 긴 세월이 지난 후 윌버포스가 70대가 넘은 나이에 모든 사람의 기립 박수 가운데 만장일치로 노예매매와 노예제도가 폐지되었습니다. 한국전쟁을 경험하신 전쟁세대의 어르신들은 땅에 대한 공유라는 말만 나와도 빨갱이로 매도하는 굉장한 혐오감과 트라우마가 있음을 인정해야 합니다. 그분들 나름대로 그 시대를 충실히 사셨음을 인정하고 그분들을 존중해 드리며 점진적으로 다음 세대의 변화를 준비해야 할 것입니다.

 

윌버포스가 46년 동안 많은 사람들을 가르치고 영국 사람들의 양심을 일깨웠습니다. 그는 노예제도의 폐해를 드러내고 마비되었던 사람들의 양심을 다시 기독교 국가에 합당한 모습으로 돌이켰던 것처럼, 우리도 희년을 이루기 위해 당장의 눈에 보이는 가시적인 결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다음 세대에는 정말로 공의로운 사회체제에서 살아갈 수 있도록 다음 세대들에게 희년사상을 적극적으로 가르치고 교육하는 긴 안목과 지혜가 필요하다고 봅니다.

 

1885년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선교사님의 입국으로 시작된 한국 개신교 선교가 올해로 127주년이 되었는데 기독교적 가치관과 사상이 우리의 삶과 문화, 그리고 생활양식 속에 뿌리내리기에는 아직까지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예를 들어 미국의 경우, 나름 문제가 많지만 그래도 빌 게이츠와 워렌 버핏과 같은 부자들이 많은 돈을 사회로 환원하며 기부하지 않습니까? 300년 이상의 기독교 전통으로 인해 미국은 적어도 기부문화가 그들에게 뿌리내려 상속보다는 기부를 오히려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아직까지 기부는 커녕 오히려 재벌 총수들마저도 상속세 한 푼 내지 않고 상속하며 탈세하려는 졸부들이 즐비하지 않습니까? 기독교적 문화와 가치관이 더 깊이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더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정권이 바뀌면 아무리 좋은 제도도 뒤집힐 수밖에 없는 한계를 보면서 법과 제도를 바꾸는 것과 함께 누가 봐도 거부할 수 없는 국민들의 의식과 가치관의 변화가 선결되어야 할 것입니다. 희년사상에 기초한 이러한 성숙한 의식과 가르침들을 위해 교회가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그 길을 걸어가며 본을 보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기득권을 누리는 소수의 사람들이 토지와 재산을 기부할 수 있도록 하는 것도 필요하겠지만 저는 열정과 순수함으로 가득 차 있는 청년대학생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통해서 희년의 가르침이 주어졌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학기 제 수업을 들었던 말레이시아 학생을 소개하고 싶습니다. 그 학생은 대한민국 정부 초청 장학생으로 온 우수한 학생이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없었지만 한 학기 동안 제 수업을 듣고 나서 감사하게도 2011년 12월 즈음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신앙생활을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지난 3월 초 이번 학기가 시작할 때 그 학생이 저에게 찾아와서 봉투 하나를 건네는 겁니다. 이게 뭐냐고 물었더니 자기가 정부초청 장학생이어서 매달 학교에서 50만원 씩 생활비 보조를 받는다고 하더라구요. 그런데 제 수업을 들으면서 정말 더 어렵고 힘든 학생들이 많이 있는데 자기는 그래도 생활비를 받으니까 어려운 학생들을 위해 쓸 수 있도록 교수님께서 필요한 학생들에게 써 달라고 12월, 1월, 2월 3개월 동안 5만원씩 모은 15만원을 가져온 겁니다. 저는 수업시간에 십일조 얘기를 한 적이 없었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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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한테 15만원이 그렇게 크지 않은 돈일 수 있겠지만 말레이시아에서 15만원은 특히 한 달에 50만원으로 살아가는 유학생에게 15만원의 의미는 굉장히 다를 겁니다. 그런데 기쁘게 내면서 하는 말이 “교수님 제가 매달 5만원씩 가지고 올 겁니다”하는 겁니다. 하나님의 공의와 희년, 약자와 가난한 자들에 대한 마음을 품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희년의 원리를 가르친다면 처음 복음을 접하는 외국 청년도 다른 어려운 사람을 위해서 기꺼이 자신의 돈을 내어놓을 수 있음을 보았습니다. 이러한 점이 청년들이 지닌 훌륭한 장점이 아니겠습니까?

 

희년함께에 해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일단 개인적으로 많은 관심과 시간을 쏟으며 함께 하지 못해서 죄송스런 마음이 있구요. 하지만 여러 가지 면에서 한국사회 전반에 걸친 희년을 위해서, 희년사회를 위해 애써주신 분들의 섬김과 수고에 굉장히 감사하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자주 뵙지는 못해도 마음은 늘 동역자로 함께 있음을 전하고 싶습니다.

 

한 때는 교회나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희년운동이 쉽지 않아 위축되었던 것으로 압니다. 희년운동 자체가 우리의 탐욕과 욕심을 내어놓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온전한 마음을 위해서 더욱 기도하면서 성령의 인도하심 가운데 갈 수 있는 자리가 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 세대가 지나고 나면 희년함께는 분명히 한국사회에 중요한 기여를 했다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때가 되면 우리도 어느 정도 중요한 위치에 앉아 있을 수 있다고 봅니다. 힘들고 어려울 때에야 순수한 마음으로 갈 수 있지만 오히려 많은 것들이 갖추어지고 누리게 될 때 우리 가운데 분열과 갈등이 있을 수 있습니다. 우리가 서로 논의하고 운영함에 있어서 항상 서로 귀를 기울이고 겸손하게 마음을 모아가는 자세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하나님의 뜻을 묻고 같이 마음을 모아갈 수 있는 자세가 있다면 저는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귀하게 은혜를 주시지 않을까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교회에 해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캠퍼스에 있다 보니까 한국교회가 캠퍼스에 좀 더 많은 관심을 가져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군대는 65만 정도인데 우리가 황금어장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대학 캠퍼스는 전문대를 포함해서 2-300만 명이 된다고 합니다. 군대 이상으로 중요한 영적 황금어장입니다.

 

한국교계에서 군대의 경우, 신대원을 졸업하면 목사 안수를 주고 바로 군목으로 파견을 해줍니다. 전임사역지로 인정을 한다는 얘기죠. 그런데 캠퍼스는 전혀 그렇지 않아요. 캠퍼스는 더 많은 젊은이들의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실제로 캠퍼스 사역은 그냥 젊을 때 잠깐 선교단체에서 훈련하는 사람들이 거쳐 가는 정도로만 보는 경향이 많습니다.

 

저는 한국교회가 이제는 캠퍼스를 전문사역지로서 인정을 해줘야 한다고 봅니다. 캠퍼스 선교 사역자로서 이들이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여러 가지 교단적인 차원의 배려가 필요합니다. 교회에서도 캠퍼스 사역이 내 교회 사람을 만들어내기 위해 사람을 보내는 정도가 아니라 정말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 수고할 수 있는 사람을 길러내기 위해 기꺼이 사람을 보내고 재정을 후원할 수 있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캠퍼스 선교 사역의 사상적 밑바탕이 희년의 가르침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앞서 제가 말씀드린 대로 우리가 보통 나와서 전도지 나눠주고 기타 치면서 복음을 전하며 예수천국 불신지옥을 외쳐도 사실 쉽게 복음증거가 되지 않습니다. 지성인들이 모인 대학생들에게는 오히려 복음의 걸림돌이 되기 쉽상입니다. 지성사회에 합당하고 통일한국의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희년의 중요한 가르침들을 교회가 함께 고민하며 제시할 때 결국 청년들이 귀를 기울일 것입니다. 저는 연세대학교에서 희년에 대한 강력한 메시지를 통해 신앙으로 변화되는 많은 청년들을 보고 있습니다. 기존의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천당 불신지옥만을 외치는 복음증거 방식이 아니라, 이 시대의 문제와 아픔을 보듬어줄 수 있는 하나님의 공평과 정의, 바로 희년의 복음이 함께 선포될 때 청년들은 굳게 닫힌 마음을 열기 시작하기 때문입니다. 이제는 교회가 이런 방식으로 좋은 사역자들을 보내고 희년의 가르침들을 청년들과 함께 나눌 수 있는 기회를 자주 마련해야 하지 않나 그런 생각을 해봅니다.

 

캠퍼스 사역을 하는 입장이시라 청년세대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이 많을 것 같습니다. 청년세대들에게 해주시고 싶은 말씀 부탁드립니다.

 

저는 학교에서 청년들을 보면 청년들이 위축되어 있다는 것을 많이 느낍니다. 취업문제, 스펙쌓기에 워낙 지쳐있다 보니까 소위 말하는 열정과 패기가 사라져 있습니다. 그야말로 자기 것을 다 포기하고 몇 년 동안 휴학할 수 있는 각오들이 있었으면 싶은데 요즘 학생들은 워낙 자기 삶에 매여 있지 않나 싶습니다.

 

인생을 길게 보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이라고 하면 자기 인생을 걸 수 있는 열정들이 많이 나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차원에서 우리가 자기가 속해있는 테두리 속에 묶여 있지 않고 눈을 넓혔으면 좋겠습니다. 예전에는 야학이라든가 공부방 같은 걸 통해서 어려운 사람을 돕고 하는 것들이 정말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는데 요즘은 그것마저도 봉사활동인증을 하기 위한 차원에서 하는 정도이지 순수한 의도에서 하는 경우가 많지 않은 걸 보면서 청년들이 사회 속에 어둡고 가난하고 힘든 사람들을 위해서 자기 삶을 드릴 수 있는 그런 마음들을 품으면 좋겠습니다.

 

그리고 한국 사회가 굉장히 많이 누리고 있지 않습니까? 좀 더 어려운 상황에 있는 나라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면 좋겠습니다. 연세대학교를 설립한 언더우드 선교사님도 26살의 나이에 자기의 사랑하는 약혼자와의 결혼도 포기하고 미국의 담임목회 자리도 포기하고 아무도 가지 않았던 조선 땅에 와서 지금의 한국기독교의 초석을 놓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비전을 품은 청년 한사람의 헌신과 섬김이 한 나라, 한 민족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그런 꿈을 품고 이 시대의 청년들이 과감한 결단들을 했으면 합니다.

 

긴 시간 인터뷰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기도제목 있으시다면 나눠주세요.

 

학교에 있다 보니까 수업을 통해서 학생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희년의 가르침을 통해서 신앙 안에 들어오도록 돕는데 그들이 신앙 안에 들어와서 한국 사회와 교회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도록, 그리고 이들을 온전한 복음으로 지혜롭게 돕고 섬기는 역할을 잘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 부탁드립니다. 또 하나는 2012년부터 연세대학교에서 <연세 학원선교 연구소>를 새롭게 시작되는 이곳이 한국교회와 캠퍼스, 청년 사역에 새로운 전환점이 될 수 있도록 많은 관심과 기도 부탁드리겠습니다.

 

​[201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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